전체 글8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3악장-이고르 레비트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다른 음을 내는건 당연할진대 유독 귀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오늘 아침 '출발FM과 함께'에 나온 베토벤의 비창은 이고르 레비트 버전이었다. 이 곡은 드라마를 통해 각인된 것도 있어서 그후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오늘은 더 그랬다. 이고르 레비트는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지 신경 써서 들은 적이 없는데 피아노를 치고 싶게 만드는 연주자였다. 적어도 오늘 아침에는 그랬다. 한 음 한 음 똑 부러지듯 명확한 연주때문인지 비창 특유의 애틋한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아니, 그런 감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스스로를 운동가(Activist Mensch)라고 칭하는 이답게 연주 또한 역동적인 느낌을 줬는데 그러면서 묘하게 정적이고 왠지 모를 공허함이 스며있다. 그 스치듯 지나.. 2022. 5. 3. 조 말론의 오렌지 필과 모란 향수 오렌지 필에 대해서는 예전에 언급한 바 있는데, https://dimenticate.tistory.com/entry/%EC%81%98%EC%95%84%EC%A2%85%EA%B3%BC-%EB%A7%A4%EA%B7%B8%EB%86%80%EB%A6%AC%EC%95%84 쁘아종과 매그놀리아 향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언제부터 좋아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어렸을 때는 아 dimenticate.tistory.com 다 쓴 기념으로 짧게 한자락 남긴다. 처음엔 생경한 향기에 질색하며 불평을 했는데 쓰다보니 정이 든건지 꽤 마음에 들었고 잘 썼다. 물론 내 돈 주고 다시 구입하지는 않겠지만 누가 선물한다고 하면 잘 .. 2022. 4. 20. 영국식 정원의 비밀-아리스가와 아리스 글, 마마하라 에리 그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국명 시리즈 만화판으로 과 함께 나왔다. 소설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만화에는 표제작인 영국식 정원의 비밀과 (생뚱맞게) 어두운 여관이 실렸다. 그리고 부록으로 마마하라 에리 식(=비엘식) 짧은 변주가 실렸다. 소설을 만화로 하는 경우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제외하는 등 작가의 연출법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분위기가 다르다. 경력이 상당한 작가인지라 화면 연출력이 좋고 미스터리 특성에 맞게 이야기를 잘 뽑아냈다. 그런데 비엘 만화가라 그런지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관계가 너무 비엘스럽다. 부록으로 가면 그런 분위기가 농후한데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드라마 시디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건조한 드라마 시디와 달리 만화는 조금 짙은 색.. 2022. 4. 14. 트위터 단상 그동안 몇 번의 블로그 이사와 자주 가던 사이트의 폐쇄로 인해 쓴 글들도 떠돌아 다녀야 했는데 옛집을 찾고 보니 완전하게 정착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든다. 어쩌면 이전의 블로그들에서는 정착했다는 느낌이 없었기에 글을 쓰지 못했던게 아닐까.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니 되도록 짐을 줄여야 하는 심정이 되어 글쓰기를 기피했을지 모른다. 핑계에 불과할지 몰라도 어쨌든 환경은 중요하다. 그것이 인터넷 플랫폼이라 하더라도. 트위터를 시작한지 이제 십 년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름 꾸준히 떠든 셈인데 요즘에서야 겨우 적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트위터만의 고유한 특징때문일 것이다. 140자라는 제한때문에 표현은 직설적이고 간결해졌고 불필요한 수식어는 자제하게 되었다. 트위터에서는 .. 2022. 4. 12.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 이번 주로 막을 내리는지라 기록 차원에서 짧게.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회는 호안 미로를 빼면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는다(사실 호안 미로도 딱히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이곳의 전시회는 뭔가 산만한 느낌을 준다. 동선도 어딘가 어수선한 감이 있고 주제별로 묶어놓는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하다. 전시 품목만 따지면 상당히 괜찮은 편인데 부가적인 요소가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이다. 전시회에서 이런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작품별로 주제를 어떻게 묶고 동선을 짜는 일은 큐레이터의 몫일텐데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그리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어쩐지 기피하게 된다. 이번에는 러시아 미술이라 갔는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보는둥 마는둥.. 2022. 4. 12. 폭력적인 삶-파솔리니 주인공 톰마소 푸칠리의 열세 살에서 스무살까지 삶을 그린 (1959)은 파졸리니가 동성애 스캔들로 공산당에서 축출되어 로마 변두리에서 교사 생활을 했을 때 쓴 소설이다. 평전에는 파졸리니의 삶과 결부시켜 으로 옮겼는데(또한 일본판 제목도 激しい生이다) 파졸리니의 삶을 생각하면 어울리는 제목이겠으나 내용으로 보나 소설 속에 그려진 상황을 보나 폭력으로 번역하는게 걸맞는 것 같다. 파시즘이 만연했던 당시 빈민촌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아이들의 폭력적인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그의 동성애가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파졸리니는 공산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로마로 쫓겨간 그가 빈민촌의 소년들을 보며 쓴 소설이 거리의 아이들(Ragazzi di vita 1955 평전에서는 발랄한 소년들)과.. 2022. 4. 12. 루이스 웨인의 전기적 삶 영화는 루이스 웨인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어머니와 다섯 여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스무살 때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던 배를 타고 가다 생긴 사건을 보여줄 때 간간이 설명하는 식이다. 전기 영화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루지 않음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영화에서 주어진 정보 만으로도 그의 어린 시절이 어땠을지 충분히 상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키에 나온 내용을 조금 덧붙이자면, 그의 아버지는 직물상이었다. 영화에서 루이스 웨인이 (나중에 아내가 될) 가정교사 에밀리의 파란 숄을 눈여겨 보고 멋지다고 칭찬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물상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옷감에 대한 안목을 길렀기 때문일 것이다. 에밀리는 죽기 전 날 숄 조각을 루이스의 일기.. 2022. 4. 11. 밀 힐렐스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요새 한동안 새벽에 명명을 듣지 않았는데 어제는 재즈수첩 듣다가 이어폰을 낀 채로 잠이 들었고 명명의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중간쯤에 깼다. 깰 때가 되어서 그런 건지 치프라 때처럼 연주에 깬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잠에서 깨니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꿈과 현실을 오가며 들리는 연주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예밀 길레스는 소련의 오데사 태생으로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지역이다. 우크라이나어로 하면 예밀 길레스가 아니라 밀 힐렐스다. 하지만 예밀 길레스로 부르고 있고 명명 진행자 역시 그 이름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 이 진행자는 고집스럽다. 위키에도 길렐스라 표기하고 있는데 메모 부분에 힐렐스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 2022. 4. 11. [인터뷰] 해피 아워 - 하마구치 류스케 원문은 여기 https://kobe-eiga.net/webspecial/cinemakinema/2015/12/539/ 2015년 11월 21일 고베 영화 자료관에서 행해진 인터뷰.취재,글: 라디오 간사이 시네마 키네마> 요시노 다이치 *편의상 반말투. 존칭 생략, 의역, 오역 주의->일부만 옮겼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만든 고베 영화 해피 아워> 가 상영중이다. 즉흥 연기 워크샵에서 시작해 클라우드 펀딩과 해외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을 하며 개봉 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집대성적 요소와 신선함을 두루 갖췄다. 작품을 형성하는 대사와 카메라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본을 상영한 지 약 십 개월 만에 극장 개봉을 했다. 5시간 17분 판본이 되기까지 경위를 말해줄 수 .. 2022. 4. 5. [인터뷰] 브루투스 하마구치 류스케 -원작과 영화 비교 *편의상 반말투, 존칭 생략, 의역 및 오역 주의. 단편 원작 영화는 각색이 재미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듣고 영화화 된 다섯 편이 원작과 어떻게 다른지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탐색한다. 먼저 무라카미가 기쁘다는 감상을 남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부터. -원작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접한 건 언제였나 하마구치: 처음 읽은 건 삼십 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분슌에 실린 걸(*2013년 12월호)추천해줘서 읽었는데, 연기가 주요 소재란 점과 이야기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 이제껏 내가 다룬 이야기와 비슷했다. 당시 나한테 무라카미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건 현실미가 전혀 없었는데 이건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제작자가 처음 기획한 작품은 다른 단편이었다.. 2022. 4. 5.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