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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액자 소설을 포함한 두 작품을 낸 온다 리쿠

일본 경제 신문에 실린 인터뷰로, 원문은 여기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D289SV0Y3A420C2000000/ 작가 온다 리쿠가 장편 미스터리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또다른 소설 을 차례로 냈다. 집대성적인 작품으로 창작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술회한다. 5월에 나온 (슈에이샤)가 슈에이샤 문예지 에 연재를 시작한 것은 2007년 10월. 그 후 지면을 옮겨 문예지 에 실렸다. 연재 기간만 따지면 15년이다. 수수께끼의 작가 메시아이 아즈사의 대표작 은 세 번이나 영상으로 제작될 뻔 했지만 그때마다 뜻밖의 사고로 중지되고 저주받은 소설이라는 소문이 돈다. 그 비밀을 쫓는 소설가 후키야 고즈에는 호화 여객선 여행을 통해 관계자를 취재하기로 한다. "애거사..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요즘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즐겨 듣고 있다. 예전에도 즐겨 들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태도로 듣게 된다.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단순히 좋다는 감상외에는 별다른게 없었는데 지금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다. 그런데에는 나에게도 풍파에 시달린 지난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노래가 어떤 시기에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철없고 무모하던 어린 시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나이를 먹고 힘든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터득한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데는 이 노래가 빌리 조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떠돌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바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다. 꽉 조인 넥타이를 풀고 단추를 푸르며 소매를 접어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피..

스치는 단상 2023.07.04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공간

어제부로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유독 아쉬운 것은, 얼마전 트위터에서 자주 가던 블로그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올초 1월에 니클라스 루만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서 반가웠다는 말을 했는데, 이글루스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댓글을 자주 달고 메일 교환까지 하며 친분을 쌓은 그 분과 교류는 그 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블로그를 닫으며 끊어졌다. 그렇게 끊긴 연결고리가 근 십 년만에 다시 글을 올리며 다시 이어지나 싶었고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겼건만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는 바람에 다시 끊겼다. 그게 너무도 아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오랜만에 번역가 아사바 사야코의 블로그를 들어가 죽 훑었다. 아사바 사야코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에서 ..

스치는 단상 2023.06.17

복수-미시마 유키오

조분샤에서 나온 은 모두 다섯 권으로, 주제별로 모은 앤솔러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리즈라 원문을 가다듬어 이해하기 쉽게 고쳤다. 저주 편에는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세 편이 전쟁으로 인해 은원 관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의 ‘복수’도 그 중 하나다. 이 단편은 1954년 (줄여서 분슌) 7월호에 실린 것으로, 아들을 전쟁 범죄자로 만들어 교수형에 처하게 만든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읊어보자면, 곤도 도라오는 부하이자 같은 마을 사람 구라타니 겐부의 아들을 전쟁 범죄자로 몰아 교수형에 처하게 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겐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도라오에게 복수를 맹세한 혈서를 보낸다. 언제 겐부가 찾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도라오..

활짝 핀 벚꽃 숲 아래 -사카구치 안고

'활짝 핀 벚꽃 숲 아래(桜の森の満開の下)' (1947)는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 소설로 안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설화적 분위기가 짙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지만 생소하지 않을까 싶어 내용 소개를 하자면, 어떤 산마루에 산적이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여행객의 금품을 강탈한 뒤 죽이고 동행한 여인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여자로 삼았다. 산적은 산이 자신의 것이라 여겼지만 딱 한 군데 벚나무 숲만큼은 두려워 했는데 벚꽃이 활짝 필 무렵 나무 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면 미쳐버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봄 날, 그 날도 산적은 여행객을 덮쳐 죽이고 동행한 여인을 산채로 데려왔다. 남편이 죽는 모습을 봤음에도 여인은 산적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지시했다. 여인은 산적으로 하여금 산채에..

프리다 칼로 사진전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은 헤이든 헤레라의 전기를 통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프리다 칼로는 생소한 화가였으며 국내에 나온 저작이 없었다.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헤이든 헤레라의 프리다 칼로 전기를 뛰어넘는 책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적어도 국내에 나온 칼로 관련된 책 중에서는. 르 클레지오 역시 칼로에 대한 책을 썼는데(국내에 나와있음) 를 읽은 이후로 나는 이 작가의 비대한 자아를 견딜 수 없었다. 많은 프랑스 작가들이 프랑스적인 기질을 발휘해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지만 클레지오의 칼로에 대한 책은(그건 전기도 뭣도 아니다) 자신이 상상하는 틀에 가둔 상상 속 칼로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련없이 버렸다. 헤이든 헤레라는 프리다의 삶을 충실히 그리면서도 그녀의 내면까지 깊게 파고들며..

보고 듣고 2023.04.04

어떤 기억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아마 아홉 살 때일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은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지 않아 외부에 설치되었다. 흔히 말하는 변소였다. 그 근처는 친가 쪽 친척들이 모여 사는지라 그 중 한 집을 방문해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용변이 급해 변소를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 집 외에 화장실을 가는걸 꺼려했는지라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변소 문을 연 후 보고 말았다. 거기에는 어떤 여성이 목을 매 죽어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까지 보지는 못했다. 한참을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지만 어쩐지 외면할 수 없어 빤히 쳐다봤다. 그 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스치는 단상 2023.03.28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대신이라고 할 지 사진과 영화,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공으로 삼고팠던 그림은 취미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건축은 어려서부터 그림과 함께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건설 쪽에 몸을 담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 역시 영화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 작업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사진에 대한 감각도 그 비슷하게 있겠거니 멋대로 단정하고 돈을 모아 괜찮은 카메라를 사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다. 하지만 사진 찍는 기술은 전혀 늘지 않았고 그쪽에는 영 재주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영화를 찍겠다는 소망은 자취를 감췄다. 친구도 ..

스치는 단상 2023.03.12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

은 사드 후작의 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파졸리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에 따르면, 살로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도에 위치한 도시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살로라는 이름에는 이탈리아의 암울한 역사가 담겨있다. 1943년 무솔리니를 체포한 연합군은 무솔리니의 뒤를 이어 새로운 총리로 피에트로 바돌리니를 내세웠다. 바돌리니는 이어 휴전 협정을 체결했고 이를 배신 행위로 간주한 독일이 무솔리니를 탈출시키고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을 수립한 곳이 바로 살로다. 그렇게 탄생한 살로공화국은 독일군을 지지했고 공포 체제에 돌입했다. 이 시기 독일군은 770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파졸리니는 영화에서 도로 표지판을 등장시켜 배경이 살로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살로는 세르조 치티가 기획한 것..

베드로의 장렬, 그리고 심정호흡

어렸을 때 애거사 크리스티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그리고 뤼팽 시리즈를 즐겨 읽긴 했어도 미스터리 소설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인건 아니었다. 추리 소설, 또는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무지한 시기였다. 일본 소설은 하루키로 시작해 이런저런 책을 읽었지만 미스터리 쪽은 관심이 없었던 터라 나중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미야베 미유키의 를 접하고 일본 미스터리에 발을 들어섰다. 그것도 내용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다 옮긴이 후기가 마음에 들어 카페도 가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본 미스터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원제: 기나긴 살인)>지만 스기무라 시리즈는 각별하다. 베드로의 장렬은 시..

보고 듣고 202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