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영국식 정원의 비밀-아리스가와 아리스 글, 마마하라 에리 그림

디멘티토 2022. 4. 14. 16:58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국명 시리즈 만화판으로 <러시아 홍차의 비밀>과 함께 나왔다. 소설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만화에는 표제작인 영국식 정원의 비밀과 (생뚱맞게) 어두운 여관이 실렸다. 그리고 부록으로 마마하라 에리 식(=비엘식) 짧은 변주가 실렸다. 소설을 만화로 하는 경우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제외하는 등 작가의 연출법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분위기가 다르다. 경력이 상당한 작가인지라 화면 연출력이 좋고 미스터리 특성에 맞게 이야기를 잘 뽑아냈다. 그런데 비엘 만화가라 그런지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관계가 너무 비엘스럽다. 부록으로 가면 그런 분위기가 농후한데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드라마 시디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건조한 드라마 시디와 달리 만화는 조금 짙은 색채를 띄고있다.

굴지의 기업가 미도리카와 하야토가 서재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히무라와 아리스가와가 조사한다는 내용으로 영국식 정원은 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미도리카와 하야토는 사람들을 초대해 정원에서 보물찾기 게임을 개최하는 특이한 취미가 있었는데,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곳곳에 숨겨둔 암호다. 종이에 적힌 암호를 해독하면 보물이 어디에 감춰있는지 알 수 있는 것. 미도리카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이 날도 사람들을 초대해 보물찾기 게임을 벌였고 서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히무라는 초대 받은 손님 중 하야토에게 정원 취미를 일깨워준 스승의 아들과 마주친다. 그는 시인이자 정원사로 정원에 대해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아닐까 싶다. 미스터리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미스터리는 한 편의 풍속 소설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과 검색해서 찾은 내용을 보태어 이야기하자면, 영국식 정원을 말할 때 흔히 프랑스식 정원과 대비되어 비교를 많이 하는데, 인공적이고 장식적인 프랑스식 정원에 비해 영국식 정원은 자연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국식 정원 역시 초기에는 유럽의 장식적인 정원 형태였는데 18세기에 이르러 아치 형태로 바뀌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정원을 사랑한 시인 알렉산더 호프의 명언에 따르면, 영국식 정원의 특징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경계선을 파괴하며,
자연을 모방함.

따라서 영국식 정원에는 나무 세 그루가 일직선 상에 놓이면 안 된다. 인공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선한 관점이 회화적 미의식으로 작용했고 거기에 심취한 영국인은 정원에 폐허와 같은 건물을 지어 고용인들로 하여금 명상 하도록 했다. 소설에서 설명해주던 정원사가 그것이야말로 반자연적아니냐고 비꼬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집착해 규칙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연성에 대한 기만 아닐런지.

후더닛, 화이더닛, 하우더닛이라는 미스터리 측면에서 보면 영국식 정원은 하우더닛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진상을 밝히는 부분에서 히무라는 범인이 재떨이로 어떻게 살해했는지 밝히고 살해 방법이 그 사람을 살해한 동기를 밝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식 정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 하면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을 빼놓을 수 없는데 줄거리는 기사에 잘 나와 있으니 생략하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612270032970072

영국식정원 살인사건/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82년작(영화읽기)

www.hankookilbo.com

아리스가와의 살해 방법이 재떨이로 내려치는 것이었다면 그리너웨이의 살해 방법은 익사와 구타이다. 은밀하게 독을 써서 살해하는 시릴 헤어의 <영국식 살인>에 비해 영국식 정원들의 살해 방식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또한 시릴 헤어와 아리스가와의 살인이 실내에서 이뤄진 반면 그리너웨이의 살인은 정원에서 자행된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수록 수법이 과격해지는 것은 공간에 따른 자유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일까. 비슷한 계열의 작품들을 살해 수법 측면에서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