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22 고이즈미 가주 -곤륜노 고이즈미 가주는 1975년생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나와있지 않은데 으로 2000년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각종 미스터리 순위에 올라 주목 받았다. 은 1100년대 후반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시인 파리두딘 아타르가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야기 속 주인공이자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알리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비주의자 하라카니가 사는 산에 오르고 하라카니를 비롯해 제자들이 차례로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이한 사건과 조우한다. 불나방에서 화자인 파리두딘은 보르헤스의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에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이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불나방은 2쇄에 2만부를 찍었다. 2만부라는 판매 부수는 그 자체로 나쁘지 않지.. 2025. 5. 22. 올해의 베스트 2024 한 해를 정리하며 몇 분야에 걸쳐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꼽는 올해의베스트. 역사적인 한 해로 마감될 2024년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피로로 점철되고 있지만 결산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했다. 책은 국외와 국내로, 소설과 비소설로 나눠서. 늘 그렇듯 순위는 숫자에 불과할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국외 소설 1. 스메라미싱-오가와 사토시 첫 번째 단편은 ‘칠십 인의 번역자들’ 성서에 대한 내용으로, 기원전 262년 화자인 나는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섬에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일흔 명의 역자들을 부른다. 두 번째 장은 2036년으로 건너뛰어 칠십인역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지며 종교와 음모론이 만나면 어떤 파급력을 발휘하는지 잘 그린 소설로 종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쓴 여섯 편의 단편집. 무언가를.. 2025. 1. 10. 온 세상이 비라면-이치카와 다쿠지 비를 좋아해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시기도 장마철이다.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가 지배하는 시기임에도 좋아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에는 늘 죄책감이 서린다. 때가 때인지라 태풍이 불고 수해라도 나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재난은 관계가 없을 듯 하지만 죄책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저번에 주말에 비가 쏟아졌는데 문득 이 책이 생각났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초기 단편 세 편을 묶은 단편집으로, 국내에도 번역되었지만 지금은 절판되었다. 오래 전에 번역서만 보고 말았는데 마침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길래 원서를 구입해 다시 봤다. 처음 보고 제목에 반해 읽었고 깊은 우울에 빠진듯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원서로 다시 읽으니 .. 2024. 6. 7. 복수-미시마 유키오 조분샤에서 나온 은 모두 다섯 권으로, 주제별로 모은 앤솔러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리즈라 원문을 가다듬어 이해하기 쉽게 고쳤다. 저주 편에는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세 편이 전쟁으로 인해 은원 관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의 ‘복수’도 그 중 하나다. 이 단편은 1954년 (줄여서 분슌) 7월호에 실린 것으로, 아들을 전쟁 범죄자로 만들어 교수형에 처하게 만든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읊어보자면, 곤도 도라오는 부하이자 같은 마을 사람 구라타니 겐부의 아들을 전쟁 범죄자로 몰아 교수형에 처하게 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겐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도라오에게 복수를 맹세한 혈서를 보낸다. 언제 겐부가 찾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도라오.. 2023. 5. 29. 활짝 핀 벚꽃 숲 아래 -사카구치 안고 '활짝 핀 벚꽃 숲 아래(桜の森の満開の下)' (1947)는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 소설로 안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설화적 분위기가 짙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지만 생소하지 않을까 싶어 내용 소개를 하자면, 어떤 산마루에 산적이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여행객의 금품을 강탈한 뒤 죽이고 동행한 여인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여자로 삼았다. 산적은 산이 자신의 것이라 여겼지만 딱 한 군데 벚나무 숲만큼은 두려워 했는데 벚꽃이 활짝 필 무렵 나무 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면 미쳐버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봄 날, 그 날도 산적은 여행객을 덮쳐 죽이고 동행한 여인을 산채로 데려왔다. 남편이 죽는 모습을 봤음에도 여인은 산적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지시했다. 여인은 산적으로 하여금 산채에.. 2023. 4. 8. 채식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다이디타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완전 채식을 시작했다. 보통 육식을 하다가 채식을 하게 되면 힘들기도 하고 반동 현상으로 탄수화물 식품에 집착해 중독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단계에 걸쳐 서서히 시작하는데-채식에 종류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육식을 즐겨하지 않았던터라 단계별 진입을 생략하고 바로 완전 채식에 돌입했다. 이른바 비건이라고 하는, 채식에서 높은 단계다. 채식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진입 장벽이 가장 쉬운건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으로, 경우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을 먹으며 융통성 있게 채식을 하는 경우다. 폴로(Pollo)는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나 오리고기 등 조류, 해산물, 달걀류, 유제품을 먹는다. 페스코(Pesco)는 육식은 하지 않지만 해산.. 2023. 2. 7.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이성적으로 접근해야할 인문 교양 서적조차 감성적으로, 정확히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나는 성격이 그모양이라 철학과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판 해설 초반에 ‘알튀세르 개인의 사생활과 당대 프랑스 지성사의 내밀한(사실은 얼마간 외설적인) 풍경을 엿보는데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이라고 한 부분에서 몹시 찔렸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의 사생활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들여다 봤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같은건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자서전이면서 자서전이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의문투성이의 이 책이 그토록 오래 마음에 남은 까닭은 알튀세르의 개인사가 담겨서다. 특히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부분이. 파졸리니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그의 죽음때문이었다. 충격.. 2023. 2. 3. 파리의 투안 두옹-김상수 책장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는 이런 형식의 사진집도 있다는 생각에 무척 신기했고 투안 두옹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는지 인기에 힘입어 개정판도 나오고 전시회도 열렸는데 난 책만 봤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십대이던 투안 두옹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어 있었고 십대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어떤 부분은 그대로였다. 전국에서 6백여 명이 입학하지만 졸업할 때면 2백여 명만 남는다는 어려운 과정을 뚫고 무사히 의사가 된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현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찾아 봤더니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도 있어서 잠깐 봤는데 반가웠다. https://youtu.be/CVcPEMwvv4U 3년 .. 2023. 1. 31. 사서정-마루야마 가오루 고대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화풍 판타지 만화로, 서고인 장서루(蔵書樓)의 비밀을 둘러싼 궁정 암투극으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몇몇 설정이 이채롭다. 사서정은 장서루에 있는 모든 책 정보를 암기하고 있는 일종의 인공지능과 같은 존재로, 본래는 인간이었으나 사서정의 사명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본래의 자아가 사라지고 신체기능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오직 사서로서만 기능한다. 이 사서정을 돌볼 시녀로 기비가 들어오면서 하나씩 변화한다는 줄거리인가 본데, 첫 권이기 때문에 사서정을 제외한 다른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고 세계관을 비롯해 몇몇 인물에 대해서만 소개가 되었다.. 시대극 판타지라는 점과 서사 구조를 비롯한 몇몇 요소가 비슷하기 때문인지 잠깐 아마츠키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장서루를 비롯한 사서정의 비밀은 .. 2023. 1. 30. 영국식 정원의 비밀-아리스가와 아리스 글, 마마하라 에리 그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국명 시리즈 만화판으로 과 함께 나왔다. 소설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만화에는 표제작인 영국식 정원의 비밀과 (생뚱맞게) 어두운 여관이 실렸다. 그리고 부록으로 마마하라 에리 식(=비엘식) 짧은 변주가 실렸다. 소설을 만화로 하는 경우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제외하는 등 작가의 연출법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분위기가 다르다. 경력이 상당한 작가인지라 화면 연출력이 좋고 미스터리 특성에 맞게 이야기를 잘 뽑아냈다. 그런데 비엘 만화가라 그런지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관계가 너무 비엘스럽다. 부록으로 가면 그런 분위기가 농후한데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드라마 시디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건조한 드라마 시디와 달리 만화는 조금 짙은 색.. 2022. 4. 1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