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단상 9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요즘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즐겨 듣고 있다. 예전에도 즐겨 들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태도로 듣게 된다.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단순히 좋다는 감상외에는 별다른게 없었는데 지금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다. 그런데에는 나에게도 풍파에 시달린 지난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노래가 어떤 시기에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철없고 무모하던 어린 시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나이를 먹고 힘든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터득한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데는 이 노래가 빌리 조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떠돌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바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다. 꽉 조인 넥타이를 풀고 단추를 푸르며 소매를 접어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피..

스치는 단상 2023.07.04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공간

어제부로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유독 아쉬운 것은, 얼마전 트위터에서 자주 가던 블로그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올초 1월에 니클라스 루만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서 반가웠다는 말을 했는데, 이글루스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댓글을 자주 달고 메일 교환까지 하며 친분을 쌓은 그 분과 교류는 그 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블로그를 닫으며 끊어졌다. 그렇게 끊긴 연결고리가 근 십 년만에 다시 글을 올리며 다시 이어지나 싶었고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겼건만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는 바람에 다시 끊겼다. 그게 너무도 아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오랜만에 번역가 아사바 사야코의 블로그를 들어가 죽 훑었다. 아사바 사야코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에서 ..

스치는 단상 2023.06.17

어떤 기억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아마 아홉 살 때일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은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지 않아 외부에 설치되었다. 흔히 말하는 변소였다. 그 근처는 친가 쪽 친척들이 모여 사는지라 그 중 한 집을 방문해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용변이 급해 변소를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 집 외에 화장실을 가는걸 꺼려했는지라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변소 문을 연 후 보고 말았다. 거기에는 어떤 여성이 목을 매 죽어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까지 보지는 못했다. 한참을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지만 어쩐지 외면할 수 없어 빤히 쳐다봤다. 그 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스치는 단상 2023.03.28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대신이라고 할 지 사진과 영화,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공으로 삼고팠던 그림은 취미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건축은 어려서부터 그림과 함께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건설 쪽에 몸을 담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 역시 영화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 작업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사진에 대한 감각도 그 비슷하게 있겠거니 멋대로 단정하고 돈을 모아 괜찮은 카메라를 사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다. 하지만 사진 찍는 기술은 전혀 늘지 않았고 그쪽에는 영 재주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영화를 찍겠다는 소망은 자취를 감췄다. 친구도 ..

스치는 단상 2023.03.12

책과 영화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

루엘 관련 포스팅에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슬그머니 뺐고 원래 올리려던 사진은 이거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무턱대고 구입한 전집에는 명화집도 있었는데 서양화 전집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한국화 전집은 모종의 이유로 사무실에 있다. 그것도 상당히 좋은데 암튼.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566741097317289984?s=46&t=iVA7UKTnelJlBrmKV0k1nw 트위터에서 즐기는 디멘티토 “그 중에서 가장 아끼는, 이사다닐 때마다 꼭 챙겼던 책은 세계의 명화. 애장품 목록 중 첫 번째 보물. 크기는 영화 포스터보다 조금 더 크고 전체 무게는 케이스까지 해서 11킬로그램 쯤? 안타 twitter.com 어려서 그림에 관심이 많..

스치는 단상 202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