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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단상10

밤의 정적들 이 글을 올리려고 했던 때는 작년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본 밤풍경이 마음에 남았고 동영상을 찍고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만 올리고 비공개로 놔둔 것이 기어코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쓰려면 못 쓸 것도 없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블로그를 방치한 채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하여 생각난 김에 짧은 글이나마 남겨두기로 한다. 장마철을 좋아하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이면 집에 있다가도 밖으로 뛰쳐 나가곤 했다. 이 날은 비가 온 건 아니었고 포근한 날이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데 문득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스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쳐다보곤 하는데 이 날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들도 가만.. 2024. 4. 29.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요즘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즐겨 듣고 있다. 예전에도 즐겨 들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태도로 듣게 된다.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단순히 좋다는 감상외에는 별다른게 없었는데 지금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다. 그런데에는 나에게도 풍파에 시달린 지난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노래가 어떤 시기에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철없고 무모하던 어린 시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나이를 먹고 힘든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터득한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데는 이 노래가 빌리 조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떠돌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바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다. 꽉 조인 넥타이를 풀고 단추를 푸르며 소매를 접어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피.. 2023. 7. 4.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공간 어제부로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유독 아쉬운 것은, 얼마전 트위터에서 자주 가던 블로그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올초 1월에 니클라스 루만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서 반가웠다는 말을 했는데, 이글루스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댓글을 자주 달고 메일 교환까지 하며 친분을 쌓은 그 분과 교류는 그 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블로그를 닫으며 끊어졌다. 그렇게 끊긴 연결고리가 근 십 년만에 다시 글을 올리며 다시 이어지나 싶었고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겼건만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는 바람에 다시 끊겼다. 그게 너무도 아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오랜만에 번역가 아사바 사야코의 블로그를 들어가 죽 훑었다. 아사바 사야코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에서 .. 2023. 6. 17.
어떤 기억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아마 아홉 살 때일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은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지 않아 외부에 설치되었다. 흔히 말하는 변소였다. 그 근처는 친가 쪽 친척들이 모여 사는지라 그 중 한 집을 방문해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용변이 급해 변소를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 집 외에 화장실을 가는걸 꺼려했는지라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변소 문을 연 후 보고 말았다. 거기에는 어떤 여성이 목을 매 죽어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까지 보지는 못했다. 한참을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지만 어쩐지 외면할 수 없어 빤히 쳐다봤다. 그 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2023. 3. 28.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대신이라고 할 지 사진과 영화,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공으로 삼고팠던 그림은 취미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건축은 어려서부터 그림과 함께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건설 쪽에 몸을 담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 역시 영화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 작업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사진에 대한 감각도 그 비슷하게 있겠거니 멋대로 단정하고 돈을 모아 괜찮은 카메라를 사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다. 하지만 사진 찍는 기술은 전혀 늘지 않았고 그쪽에는 영 재주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영화를 찍겠다는 소망은 자취를 감췄다. 친구도 .. 2023. 3. 12.
책과 영화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 루엘 관련 포스팅에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슬그머니 뺐고 원래 올리려던 사진은 이거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무턱대고 구입한 전집에는 명화집도 있었는데 서양화 전집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한국화 전집은 모종의 이유로 사무실에 있다. 그것도 상당히 좋은데 암튼.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566741097317289984?s=46&t=iVA7UKTnelJlBrmKV0k1nw 트위터에서 즐기는 디멘티토 “그 중에서 가장 아끼는, 이사다닐 때마다 꼭 챙겼던 책은 세계의 명화. 애장품 목록 중 첫 번째 보물. 크기는 영화 포스터보다 조금 더 크고 전체 무게는 케이스까지 해서 11킬로그램 쯤? 안타 twitter.com 어려서 그림에 관심이 많.. 2023. 1. 29.
통영에 다녀옴 기록 차원에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추후 내킬 때마다 수정하는 걸로. 1박2일로 통영에 다녀왔다. 전부터 가려고 마음 먹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다녀왔다. 지인이 어디 갈지 끊임없이 변경하면서 일정 짜는데 무척 고심했고 돌아다니는 내내 설명을 해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그토록 애를 쓴다는 사실은 무척 기쁜 일이다. 통영은 이번이 처음인데 윤이상과 박경리의 고향이고 음악제가 열리는 도시로만 알고 있었다. 돌아다녀 보니 도시 곳곳이 예술적으로 세심하게 꾸며져 있었고 예술의 도시답게 참 아름다웠다. 지인으로부터 통영의 역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돌아올 때 쯤에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윤이상 기념관으로 투사 이미지가 강.. 2022. 5. 19.
조 말론의 오렌지 필과 모란 향수 오렌지 필에 대해서는 예전에 언급한 바 있는데, https://dimenticate.tistory.com/entry/%EC%81%98%EC%95%84%EC%A2%85%EA%B3%BC-%EB%A7%A4%EA%B7%B8%EB%86%80%EB%A6%AC%EC%95%84 쁘아종과 매그놀리아 향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언제부터 좋아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어렸을 때는 아 dimenticate.tistory.com 다 쓴 기념으로 짧게 한자락 남긴다. 처음엔 생경한 향기에 질색하며 불평을 했는데 쓰다보니 정이 든건지 꽤 마음에 들었고 잘 썼다. 물론 내 돈 주고 다시 구입하지는 않겠지만 누가 선물한다고 하면 잘 .. 2022. 4. 20.
트위터 단상 그동안 몇 번의 블로그 이사와 자주 가던 사이트의 폐쇄로 인해 쓴 글들도 떠돌아 다녀야 했는데 옛집을 찾고 보니 완전하게 정착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든다. 어쩌면 이전의 블로그들에서는 정착했다는 느낌이 없었기에 글을 쓰지 못했던게 아닐까.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니 되도록 짐을 줄여야 하는 심정이 되어 글쓰기를 기피했을지 모른다. 핑계에 불과할지 몰라도 어쨌든 환경은 중요하다. 그것이 인터넷 플랫폼이라 하더라도. 트위터를 시작한지 이제 십 년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름 꾸준히 떠든 셈인데 요즘에서야 겨우 적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트위터만의 고유한 특징때문일 것이다. 140자라는 제한때문에 표현은 직설적이고 간결해졌고 불필요한 수식어는 자제하게 되었다. 트위터에서는 .. 2022. 4. 12.
쁘아종과 매그놀리아 향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언제부터 좋아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어렸을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는 오히려 향수 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선물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선물받은 향수가 까사렐의 아나이스 아나이스였는데 처음 경험한 향의 영향이 컸던지 그뒤로도 플로럴 계열 향수가 좋다. 그것도 그윽하고 무거운 쪽 보다 부드럽고 상쾌한 쪽. 위 사진의 쁘아종은 내 것이 아니라 엄마 것이다. 한 이십여 년 되었나, 선물 받으신 건데 향수를 쓰지 않는터라 여태 가지고 계셨다. 선물한 이가 아들이라 더 특별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선물한 것도 몇 개 되었는데 쓰지도 않고 전부 .. 2022.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