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몇 번의 블로그 이사와 자주 가던 사이트의 폐쇄로 인해 쓴 글들도 떠돌아 다녀야 했는데 옛집을 찾고 보니 완전하게 정착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든다. 어쩌면 이전의 블로그들에서는 정착했다는 느낌이 없었기에 글을 쓰지 못했던게 아닐까.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니 되도록 짐을 줄여야 하는 심정이 되어 글쓰기를 기피했을지 모른다. 핑계에 불과할지 몰라도 어쨌든 환경은 중요하다. 그것이 인터넷 플랫폼이라 하더라도.
트위터를 시작한지 이제 십 년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름 꾸준히 떠든 셈인데 요즘에서야 겨우 적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트위터만의 고유한 특징때문일 것이다. 140자라는 제한때문에 표현은 직설적이고 간결해졌고 불필요한 수식어는 자제하게 되었다. 트위터에서는 도무지 은유적일 수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기 위한 공간도 부족하다. 그리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다. 트위터가 온갖 쓸데없는 기능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수정 기능을 내놓지 않음은 말의 그런 속성때문일 것이다. 도로 주워 담아 다듬을 수는 없지만 없애버릴 수는 있다. 즉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오타에 신경쓰지 않는다. 맞춤법 틀렸다고 지적받지도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문제로 지적받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이 많은 이들의 글쓰기 방식은 물론 사고까지 바꿔 놨다는 생각이 든다. 직설적이고 간단한 문장만 써버릇하니 긴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며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에 이른다. 미처 가다듬지 못한 날것의 언어가 그대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역시 예외는 아니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으면 수식어를 빼고 문장부호도 지우고 보다 간결한 단어로 치환한다. 그렇게해서 140자를 넘지 않게 한다. 그나마 요령이 생겨서 요즘은 타래로 이어갈 때 중간에 말이 잘리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그 안에서 문장이 끝나게끔 정리한다. 단어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도 못채우고 끝나는 일도 허다하다. 사고의 흐름 주기가 짧아지고 깊어질 일도 없다. 그렇게 짧은 호흡의 문장만 쓰는 간결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해의 폭은 좁아지고 독해력이 떨어진다.
트위터를 쓰기 전의 나는 만연체 인간이었다. 길고 장황하게 시작한 글을 어디서 끝맺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이것대로 문제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간결체로 일관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트위터에서 만연체는 실현 불가능한 명제다. 하지만 블로그라면 가능할 것이다. 조금씩 훈련을 쌓다보면 언젠가는 간결체에서 만연체로 가는 길 어디쯤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오롯이 내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팔로잉과 팔로우라는, 함께가 아니면 홀로 존재하기 힘든 트위터와 달리 블로그에서는 나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모처럼 느끼게 된 이 편안함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덧)혹시나 싶어 트위터 글자수 검색해 보니 150이 아니라 140이었다. 찾아보기 귀찮아 대충 썼더니 또 틀렸다. 쓰기 전 검색은 필수로 정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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