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단상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디멘티토 2023. 7. 4. 21:55


요즘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즐겨 듣고 있다.
예전에도 즐겨 들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태도로 듣게 된다.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단순히 좋다는 감상외에는 별다른게 없었는데 지금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다. 그런데에는 나에게도 풍파에 시달린 지난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노래가 어떤 시기에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철없고 무모하던 어린 시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나이를 먹고 힘든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터득한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데는 이 노래가 빌리 조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떠돌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바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다. 꽉 조인 넥타이를 풀고 단추를 푸르며 소매를 접어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피로를 삼킨다. 문득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던 사람은 이제 자신 뿐 아니라 바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피아노 선율과 피아노를 치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념에 젖는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밤이면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날을 추억하고 과거를 향해 시간 여행을 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나이와 상관없이 지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빌리 조엘의 목소리에는 나이를 먹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일깨우는 힘이 있다. 그게 행복한 추억일 지, 혹은 그리움일 지, 그것도 아니면 후회일 지, 아니면 그 모든게 섞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한 시점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에 속한 정서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차창에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를 보며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듣고 있노라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이 세상에 오직 나와 그 노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좁은 차 안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노래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https://youtu.be/gxEPV4kol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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