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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둘러싼 모험

아시아를 장악한 이세계 환생 -이노우에 아키토

by 디멘티토 2024. 8. 3.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slowinternet.jp/article/20240718/

글쓴이 이노우에 아키토는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한 인문 사회과학 연구자로 현재 리쓰메이칸 대학 부교수. 이 기사는 2021년에 올린 연재를 갱신한 것으로, 글에 실린 작품은 2021년을 기준으로 했음을 참고 하기바람.

*편의상 반말체로 썼으며 의역 또는 오역에 주의. 내용이 길어 후반부는 생략한 부분이 있으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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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시아 공통 언어가 된 이세계 환생물 대부분은 복수극 형태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일본이 괴롭힘을 당한 이가 개인적 동기로 강자에게 되갚아 주는 전개가 많은 반면 한국과 중국은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복수극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는 게임연구자 이노우에 아키토 씨가 한국과 중국의 이세계 환생물의 방향성이 어떻게 다른지 고찰했다.

 


처음 이세계 환생물에 대해 쓴 것은 2017년이었다. 2017년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세계 작품 소비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지만 2021년 현재에도 이세계물은 쉼없이 웹소설을 비롯해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며 많은 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또한 이러한 흐름은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10년 후반에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의 문화현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현상을 알기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2016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만화 및 소설 어플 '피코마'다. https://piccoma.com/web/  피코마는 한국의 카카오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한국 어플이다. 일본 만화도 많이 올라오지만 한국과 중국 웹툰 번역물이 많고 환생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인기 작품 대부분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피코마에서 조회수가 많았던 인기 작품을 보면 1위는 한국의 <나 혼자만 레벨업>이 차지했고 2위는 <보스 인 스쿨>이,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귀멸의 칼날>은 3위에 그쳤다. 그리고 4위는 중국의 <다시 최강의 신선으로>(원제:중생지도시수선 重生之都市修仙)
피코마에 올라온 작품은 일본의 웹소설 사이트의 이세계 환생물 소설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같다고 볼 수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환생하는 곳이 중세 유럽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중국 무협 세계라는 것이다. 일본 웹소설은 급을 매겨 강함 순위를 정하는 시스템이지만 무협물은 일성 이성, 삼성 또는 고수, 일류고수, 최강고수로 나뉘어 전개된다. 이런 개념이 보편화 되었는지 중세 유럽 판타지라 할지라도 한국과 중국 작품에서는 일성, 이성 개념이 쓰이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의 <4000년만에 귀환한 대마도사>는 유럽 판타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강함을 나타내는 개념은 일성,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협물은 일본에서 마이너 장르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20세기 중반부터 폭넓게 수용되었을 정도로 메이저 장르다. 이런 세계관이 지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를 이루는 뼈대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환생을 소재로 하여 무협물과 결합한 작품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마경천기>, <화산전쟁>은 처참하게 죽은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음 생에 강한 인물로 환생한다. 또한 원래 전설적인 고수였던 주인공이 죽은 뒤 수천 년 뒤에 환생하는 설정도 꽤 있으며 연재를 죽 따라가다 보면 설정이 다 비슷한지라 어떤 작품의 이야기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한중일의 복수극

일본 소설이 설정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차이가 있듯 피코마의 환생물도 몇 가지 전형성을 띈다. 한중일 환생물은 복수극 형태가 상당히 많지만 복수를 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1. 일본: 괴롭힘을 당하는 이의 복수로 전개
먼저 복수극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는 2010년 전반의 시라코메 료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이나 아네코 유사기 <방패 용사 성공담>이 있으며 2010년 후반부에는 용자 파트에서 무능력하다고 낙인 찍힌 주인공이 거듭나는 전개로 양산되었다. 이야기 뼈대는 괴롭힘을 당한 주인공이 되갚아 주는 형태의 내용이 많다. 최근에는 복수극을 바탕으로 하는 포맷이 지나친 나머지 괴롭힘 당하는 주인공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지만, 일본 작품에서 복수 상대는 반친구라든가 대등한 입장인 사람에게 행하는 복수가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 입장에서는 정의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2. 한국: 권력자에 대한 저항으로서 복수
한국 복수극의 원한은 일본보다 훨씬 강도가 센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피코마에서 연재된 <이태원 클라쓰>를 보면 알 수 있듯 대결하는 상대가 반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친구라 해도 대기업의 아들이며, 실질적으로 주인공을 몰아붙이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권력자다. 한국 복수극 대부분은 개인적 복수극임에도 부당한 권력에 맞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형태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무협물 <신마경천기>나 중세 유럽풍의 <4000년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역시 권력자나 지배자가 꾀하는 음모 이야기가 큰 주제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복수물은 일본 독자인 나에게 지나치게 강도가 센 느낌이 들지만 근대 한국사회에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6월 민주 항쟁을 보면 일본 보다 권력자의 음모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는 사회이기도 하다.

3. 중국: 약육강식 세계에서 벌어지는 복수
일본의 많은 독자에게 한국 복수극은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일본 복수극에도 권력자에 대한 복수를 주요 소재로 삼은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 이야기의 차이점은 어디까지나 경향이 다를 뿐이지 학대받은 약자가 정의를 실현한다는 전개는 비슷하다. 복수 동기가 개인적인지, 사회적 문맥이 강한지에 차이가 있는 정도다. 하지만 중국 웹소설을 보면 문화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는 정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피코마에 올라오는 중국 컨텐츠는 한국 작품들에 비하면 수가 많지 않기에 여기에서 다루는 작품이 중국이라는 거대국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몇몇 작품을 다루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무리 봐도 일본에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먼저 비교적 가벼운 작품들을 소개해 보자면, <최강 과금 플레이어> (원제:극금완가>는 전형적인 작품 중 하나로, 현실 세계에서 어떤 부자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롤플레잉 게임 세계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은 원래부터 큰 부자이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게임 세계에서 억 단위의 금액을 쓰며 최강이 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다시 최강의 신선으로>는 2020년 <귀멸의 칼날>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인기 작품으로, 피코마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중국 웹툰이다. 주인공은 500년 동안 수련한 신선이지만 인간세계에서 대학생으로 환생한다. 이 작품은 약육강식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힘이 전부인 세계라는 점에서 일관되게 힘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비교를 위해 격투맨 바키 시리즈(*이타가키 게이스케의 만화로 국내에는 격투왕 맹호라는 제목으로도 나왔다)와 차이점을 이야기 하자면, 바키 시리즈에서 세계 최강이 등장할 때면 독자에게 최강이라는 가치관이 중요함을 반복해서 설득한다. 총이 등장한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 개인의 역량을 갈고 닦는 게 의미없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설득하고자 애쓴다. 반면  <다시 최강의 신선으로>는 힘이 중요함을 아무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설득 하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메타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또한 복수자의 정의나 약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복수하고자 하면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된다. 괴롭힘을 당하면 그저 되갚아주면 된다. 여차하면 죽이면 되기 때문에 주인공은 차례차례 상대방을 죽인다. 주인공 천산은 현세에서 무적의 존재인데 사회적으로도 별 차이가 없다. 또한 젊기때문에 여러 무술가에게 싸움을 걸거나 응하기도 하지만 패배한 상대에게 인정을 베푸는 일따위는 없다. 그보다 정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는 54화를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은 실력을 인정받아 임시로 군대 교관을 맡지만 위기에 처할 뻔 하지만 간단히 물리친다. 이에 팔극문의 최고수라 일컫는 인물이 나서며 고수임을 못알아봐서 죄송하다며 정중하게 사죄하지만 주인공 천산은 기분 나쁘다는 듯 
천산은 대수롭지 않은 도발에 응한 것임에도 상대에게 다리를 자르라고 요구하고 팔극권 문파 고수도 절대 강자인 주인공의 말에 반박하는 일 없이 자신의 제자에게 다리를 자르라고 명한다. 명을 받은 제자는 여기서 거부하면 문파에 해가 될지 모른다며 자신이 희생해 해결해야 한다며 진짜로 다리를 자른다. 주인공의 요구는 지나친 처사이며 악역이나 할 법한 행동으로, 일본에서라면 주위 사람들이 피하며 경원하는 전개가 펼쳐지겠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부하들이 헹가래를 치며 교관 만세를 외치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에도 변함없이 과격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주인공을 나무라며 정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벌어질 일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밟아나간다는 식의 전개가 이어진다. 게다가 이렇게 과격한 부분이 중요한 장면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또한 코믹 만화도 아니면서 매회 새로운 도구가 나오고 주인공은 썰렁한 반응을 보인다. 누가 딴지를 걸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없다. 
무서운 점은 이 이야기가 이른바 다크히어로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의 다크히어로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나오거나 일그러진 정의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일관되게 정의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고뇌하지도 않는다. 또한 주인공 뿐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악역처럼 그려진다.
예를 들어 첫 화에 여주인공의 엄마는 남주인공의 엄마와 친구라 남주인공을 여주인공에게 소개시켜주는 장면이 있다. 첫 만남에서 여주는 남주가 철이 없어 보이고 수준 떨어진다며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 여겨 악수를 청해도 비웃는다. 그녀는 속으로 아빠가 국회의원이고 엄마는 회사 사장인데 너한테 도와달라고 할 일이 있겠느냐며 무시하는 등 계급주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처음엔 특이한 설정을 통해 시각 차이를 보여주려는 건가 싶었지만 계속해서 작품을 봐도 사회 계급으로 판단하는 측면이 강하고 내편인지 적의 편인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 천지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사회가 무력, 재력, 권력과 같은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런 힘이 있는지 없는지로 결정된다. 일본에서도 이와같은 작품을 찾아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바키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힘에 부여되는 의미를 설득하려고 하며 주인공은 정을 나누고 정의에 대해 고민한다. 

필자가 중국 컨텐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모든 컨텐츠가 이와 같지 않음은 알고 있다. 20세기 무협소설 대부분은 의리와 정을 다루고 있고, <명일방주>같은 게임은 많은 이데올로기가 부딪히고 차별을 둘러싼 이야기다. 류츠신의 <삼체> 역시 초반부터 문화대혁명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요즘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가 <다시 최강의 신선으로>와 같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필자가 접한 중국사람들에게서 최강 신선과 같은 인상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악설적 세계관 이야기가 일정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성악설 세계관과 환생물이 잘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최강 신선은 2020년에 본 컨텐츠 중 가장 충격적이었고 악몽을 꾸는 느낌이 드는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다. 일본에서라면 이런 복수극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웹소설의 주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SNS에서도 지나치게 피해자 의식에 젖어있는 사람이나 꼴사나운 자기정당화를 반복하는 경우는 흔하다. 마이너리티의 복수극은 스스로를 비극적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적대화 하는 이야기이다. 안이한 매너리즘에 빠진 이야기는 노예나 하렘에 버금가는 몹쓸 이야기다. 약자=정의와 같은 생각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약자가 정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도 악몽이지만 약자에 대한 일체의 배려가 없는 세계관 역시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