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단상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공간

디멘티토 2023. 6. 17. 14:50

어제부로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유독 아쉬운 것은, 얼마전 트위터에서 자주 가던 블로그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올초 1월에 니클라스 루만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서 반가웠다는 말을 했는데, 이글루스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댓글을 자주 달고 메일 교환까지 하며 친분을 쌓은 그 분과 교류는 그 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블로그를 닫으며 끊어졌다. 그렇게 끊긴 연결고리가 근 십 년만에 다시 글을 올리며 다시 이어지나 싶었고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겼건만 이글루스 서비스가 종료되는 바람에 다시 끊겼다. 그게 너무도 아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오랜만에 번역가 아사바 사야코의 블로그를 들어가 죽 훑었다. 아사바 사야코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영국 미스터리 기행>에서 알게된 번역가로, 도로시 L. 세이어즈 협회 회원이기도 하고 많은 여성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하셨다. 2006년 9월 18일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으로 쓴 글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인 8월 5일이다. 그리고 그 글의 제목은 '덥네요'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더위라는 말로 시작하는 글에서 그 분의 병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말은 마지막 '기억력 감퇴를 실감합니다' 정도였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근황을 알리는(어떤 소설이 출간되었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난 8월에 일본에 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일본의 한여름 더위가 어떤지는 실감을 못 했지만 9월에 가 본 적이 있기에 대충 짐작할 수는 있다. 그때 나는 이사무 노구치의 정원 미술관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에 위치한 그 미술관을 가기위해 모기와 신경전을 벌이며 산을 올라야했던 나는 9월의 습한 열기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호텔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어린 아이가 나를 보며 신기해 하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일본의 여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때 손을 흔들던 아이의 모습이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모두 75꼭지고 이 중에 절반만 읽었다. 나머지 절반은 나중에 천천히 읽으려고 아껴두었다. 즐겨찾기에 저장해 둔 사이트 중에는 그런 블로그가 몇 개 된다. 마크 피셔의 케이펑크와 마지막 글이 십 년 전에서 멈춰있는 네이버 블로그와 휴면 계정이라 접속도 할 수 없는 디시인사이드의 갤로그. 생각날 때마다 그 블로그들을 돌아보며 돌아오지 않는, 또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어제 실황음악에서 들은 페르골레지의 스테바타 마테르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떠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IuYIIX-J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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