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활짝 핀 벚꽃 숲 아래 -사카구치 안고

디멘티토 2023. 4. 8. 15:31

'활짝 핀 벚꽃 숲 아래(桜の森の満開の下)' (1947)는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 소설로 안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설화적 분위기가 짙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지만 생소하지 않을까 싶어 내용 소개를 하자면, 
어떤 산마루에 산적이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여행객의 금품을 강탈한 뒤 죽이고 동행한 여인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여자로 삼았다. 산적은 산이 자신의 것이라 여겼지만 딱 한 군데 벚나무 숲만큼은 두려워 했는데 벚꽃이 활짝 필 무렵 나무 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면 미쳐버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봄 날, 그 날도 산적은 여행객을 덮쳐 죽이고 동행한 여인을 산채로 데려왔다. 남편이 죽는 모습을 봤음에도 여인은 산적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지시했다. 여인은 산적으로 하여금 산채에 살던 일곱 명의 여인을 차례차례 죽이게 했는데 몸이 성치 못한 여인은 하녀로 부리기 위해 남겨뒀다. 이윽고 번화한 곳으로 나가고 싶었던 여인은 산적을 꾀어 산을 내려갔고 산적에게 인간 사냥을 해오라고 시켜 머리를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어지간한 일은 시키는대로 다 하던 산적도 그런 짓에 물려 자신의 산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여인과 함께 산에 오를 때 벚꽃이 활짝 피었고 돌아온 사실에 기쁜 나머지 산적은 예전의 금기를 잊고 벚꽃 숲을 지나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 문득 뒤를 돌아본 산적이 본 것은 흉칙한 오니로 변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온몸이 자줏빛으로 물든 노파의 모습으로 변한 여인은 산적을 나무에 목 매달고자 했으나 거꾸로 산적에게 잡혀 자신이 목을 매게 되었다. 벚꽃잎에 휩싸여 죽어가는 오니의 모습을 본 산적은 벚나무 아래에서 목놓아 울었다. 여인의 모습은 벚꽃잎이 되어 흩날리며 사라졌고 꽃잎을 움켜쥐려던 산적의 손도, 몸도 서서히 사라졌다. 남은 건 벚꽃잎과 차가운 허공 뿐이라는 이야기.
 

인기에 힘입어 1975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위의 이미지는 영화 스틸컷이다. 마침 유튜브에 예고편이 있어서 링크.

Trailer - 桜の森の満開の下 (1975) 篠田正浩 https://youtu.be/8e-hyowNdxc

 
사카구치 안고가 훗날 쓴 수필 '활짝 핀 벚꽃' 에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나와있는데, 도쿄대공황 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우에노 산에 쌓아놓고 태울 때 벚꽃이 활짝 피었으며 인적없는 벚나무 숲에는 바람만 일었다고 쓰고 있다. 작품을 두고 세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으며 <타락론>, <백치>와 함께 안고의 대표작이 되었다. 안고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 자체가 구원이라는 말을 했고 산적을 통해 고독과 허무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은 인간의 힘을 빌지 않고 사물을 궤도에 올리며 고독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 상태 그대로 자연에게 구원받는다. 왜냐하면 고독은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평론가 나나키타 가즈토는 잔인한 품성을 지닌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을 재촉하는 천한 신분의 사내 이야기는 이즈미 교카의 <고야스님>이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눈의 여왕>과 같은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라면서 안고의 작품에서는 여인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신성한 면모가 두드러지며 피로 물든 세계에 투명한 감각이 떠돈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새삼 원문과 비교하며 듣노라니 상당 부분 각색이 되어 있었다. 쓰다 겐지로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벚꽃은 읽기만 할 때와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 


벚꽃을 통해 공허함을 그리며 안고의 작품과 더불어 거론되는 작품에 가지이 모토지로의 '벚나무 아래에는'(1928)이 있다. 소설이라기 보다 산문시에 가까운 이 단편은 안고의 벚꽃보다 먼저 나왔는데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는 구절로 유명하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개로 이즈의 유가시마 온천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유명한 벚나무와 동물원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봄이 되면 온천을 찾았다. 그리고 결핵에 걸려 요양하는 와중에 이 작품을 썼다. 

지는 벚꽃은 덧없음과 자주 결부되는데 모노노아와레로 일컫는 덧없음은 헤이안 시대 탄생한 문학과 미학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모리 고가 영감을 받은 사이교의 시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은 이런 계열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사이교는 헤이안 시대 말에서 가마쿠라 초기에 활동한 승려로 원래 이름은 사토 노리쿄이다. 법률 제정과 관련된 직책을 맡고 있던 부모 밑에서 자란(어머니도 법률 제정과 관련된 여관리였다) 사토 노리쿄는 스물셋에 출가했고 사이교라는 법명을 얻었다. 사이교의 일생을 담은 그림첩 <사이교 이야기(西行物語絵巻)>에 따르면, 그가 출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번 째는 친한 친구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출가하게 되었다는 설, 두번 째는 여러 저서에 언급된 높은 직책의 여성과 실연설이 있다. 
출가한 후 한동안 교토의 산기슭에서 은거하다 이후에는 전국 각지를 돌며 많은 시를 남겼고 벚꽃을 좋아해 암자에 벚나무를 심었다. 무로마치 시대 제아미는 <사이교 벚꽃>이라는 노를 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많은 이들이 암자로 꽃구경 하러 찾아 오자 사이교는 방문객의 출입을 금했다. 하지만 홀로 벚꽃을 즐기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터라 차마 내쫓을 수 없어 결국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이교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니 벚꽃의 죄로다." 라는 시를 읊으며 밤새도록 꽃을 바라보다가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늙은 벚꽃의 정령이 나타나
"벚꽃의 허물은 과연 무엇인가. 벚꽃은 단지 꽃을 피우는 것에 불과한데 허물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번잡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로고" 하며 사이교를 깨우쳐 준다. 그런 후 늙은 정령은 벚꽃 명소를 사이교에게 가르쳐 주며 춤을 춘다. 그러는 사이 사이교는 꿈에서 깨고 정령도 사라지고 곁에는 벚꽃만 쓸쓸하게 있을 뿐이었다 라는 이야기.
 
사이교는 늘 벚꽃이 피는 시기에 죽기를 소망했다.
‘바라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