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채식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다이디타운

디멘티토 2023. 2. 7. 12:42

비교적 이른 시기에 완전 채식을 시작했다. 보통 육식을 하다가 채식을 하게 되면 힘들기도 하고 반동 현상으로 탄수화물 식품에 집착해 중독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단계에 걸쳐 서서히 시작하는데-채식에 종류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육식을 즐겨하지 않았던터라 단계별 진입을 생략하고 바로 완전 채식에 돌입했다. 이른바 비건이라고 하는, 채식에서 높은 단계다.
채식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진입 장벽이 가장 쉬운건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으로, 경우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을 먹으며 융통성 있게 채식을 하는 경우다.
폴로(Pollo)는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나 오리고기 등 조류, 해산물, 달걀류, 유제품을 먹는다.
페스코(Pesco)는 육식은 하지 않지만 해산물과 달걀류, 유제품 섭취.
그 다음이 육류를 먹지 않는 베지테리언 단계인데 락토 오보(Lacto Ovo)는 달걀류나 유제품을 먹고,
이와 반대로 오보(Ovo)는 생선, 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달걀류를 먹는다.
그에 비해 락토(Lacto)는 달걀류는 먹지 않으며 우유 및 유제품, 꿀까지 허용하는 채식 단계를 말한다.
그 다음이 완전 채식이라 할 수 있는 비건(Vegan)으로 보통 채식인이라고 하면 비건을 말한다.
이보다 더 엄격한 채식인 프루테리언(Fruitarian)은 채식 중 가장 높은 단계로, 과일이나 견과류같은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채식을 말한다. 강제적으로 얻는 모든 걸 거부하는 셈이다. 따라서 익혀 먹기보다 생채식을 하는데, 스티브 잡스가 이 프루테리언이었다가 암 진단 후 비건 채식으로 전환 한 걸로 알고 있다. 예전에 트윗에 쓰기도 했지만 프루테리언은 신념은 고고할지 몰라도 건강면에서 결코 좋지 않다. 잡스가 좀 더 완화된 채식을 했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채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니어링 부부의 저서를 통해서였는데(조화로운 삶을 비롯한 몇몇 저서들) 그외에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다졌다. 그 외 네이버 채식 카페를 비롯해 일본 믹시의 채식 클럽과 일본 블로그, 영미의 비건 사이트 및 블로그 등을 통해 다양한 채식을 접했는데 어쩐지 영상을 통해서는 잘 와닿지 않았다. 물론 글 보다 시각적으로 접하는 정보값이 많은 영상이 훨씬 충격적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요즘 세대들이 영상을 통해 얻는 것과 달리 어떤 새로운 지식이나 가치관은 전부 책을 통해 얻은 활자 세대다. 구태의연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영상 보다 책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접하는게 좋다.

소설 중에도 채식이 나오는 경우가 제법 있지만 이상하게 채식하면 난 다이디타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행방불명된 업동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드레이어가 정보 수집을 위해 업동이 무리에게 접근하고 그 중 한 명을 식당에 데려가는 장면이 있는데, 콩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메뉴에 소고기 스테이크도 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 사회는 자연에서 얻는 식품을 먹을 수 있는건 부자들의 특권이고 서민들은 비슷한 맛이 나는 대체 식품, 그것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을 섭취한다. 따라서 진정한 육식은 부자들의 특권인 셈이다. 이건 채식도 마찬가지인데 신선한 유기농 채소는 그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미래 사회에서 서민에게 채식은 자유 선택이 아닌, 강제 선택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식사를 하는 장면이 꽤 길게 이어져서 흥미롭게 읽었고 삽화가 곁들여져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중에 책으로 나왔지만 삽화가 빠져서 많이 아쉬웠다. 이는 잡지 연재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책은 예전에 책장 정리 할 때 처분했는데 다행히 잡지는 남아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꺼내들어 다시 읽었는데 어쩐지 가슴이 뭉클하다. 좋아하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처음 읽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구나 싶다.


한 때는 엄격하게 비건 채식을 유지했는데 사회 생활하기에 여러모로 힘들어서(정말 욕설을 비롯해 별의별 말을 다 들어본 것 같다) 요즘은 융통성 있게 지내고 있다. 가끔 계란이 들어간 케이크도 먹고 유제품도 먹고 있으니 지금 내 상태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인 셈인데 그렇다해도 늘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예전에는 채식 한다고 하면 힐난에 가까운 비난을 많이 들었는데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요즘은 채식을 권장하기도 하고 일반 식당에 가도 채식 가능한 메뉴가 많이 늘었다. 얼마 전 채식 치즈를 먹었는데 맛이 일반 치즈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이디타운에도 유사치즈가 나오는데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