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디멘티토 2023. 2. 3. 01:16

이성적으로 접근해야할 인문 교양 서적조차 감성적으로, 정확히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나는 성격이 그모양이라 철학과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판 해설 초반에 ‘알튀세르 개인의 사생활과 당대 프랑스 지성사의 내밀한(사실은 얼마간 외설적인) 풍경을 엿보는데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이라고 한 부분에서 몹시 찔렸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의 사생활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들여다 봤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같은건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자서전이면서 자서전이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의문투성이의 이 책이 그토록 오래 마음에 남은 까닭은 알튀세르의 개인사가 담겨서다. 특히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부분이.
파졸리니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그의 죽음때문이었다. 충격적인 건 영화 살로 소돔 뿐이고 삶은 평범하게 보냈다면(물론 파졸리니는 삶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알튀세르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해설에서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은 알튀세르가 아내 엘렌느 리트만을 살해하게 된 원인을 자신이 태어나기 전 가족사에서 찾고 있고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다는, 숙명론적 접근 방식은 우울함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아내의 살인조차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저지른 살인을 정신 착란으로 꾸며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포함된, 이런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정신 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죽였다고 주장하지만(그래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실상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때 상황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게 광기이며 어떤게 이성인지 확실하게 나눌 수 없다는 푸코의 말을 빌은, 알튀세르의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기록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그 울림은 공진을 일으켜 오래도록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