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단상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디멘티토 2023. 3. 12. 19:45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대신이라고 할 지 사진과 영화,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공으로 삼고팠던 그림은 취미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건축은 어려서부터 그림과 함께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건설 쪽에 몸을 담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 역시 영화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 작업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사진에 대한 감각도 그 비슷하게 있겠거니 멋대로 단정하고 돈을 모아 괜찮은 카메라를 사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다. 하지만 사진 찍는 기술은 전혀 늘지 않았고 그쪽에는 영 재주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영화를 찍겠다는 소망은 자취를 감췄다. 친구도 나도 열망만 있을 뿐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다양해서 그림에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고 눈에 들어온, 정지된 장면을 감각적으로 재현할 수도 있다. 내가 지닌 소질은 후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뒤로는 남의 작품을 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가끔 온전히 내 취향의 작품을 보게 되면 마음 깊이 탄복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뛰어난 재능을 훔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내가 가지지 못한, 영원히 가질 수없는 그 능력이 부러워 견딜 수 없다. 이야기를 짓지 못하는 자신이 그토록 한심할 수 없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들지만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다음엔 더 잘 찍어봐야지 라는 생각은 이제 품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가슴 한 켠에 사그라든 줄 알았던 열망이 다시 피어오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서글프지만 이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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