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프리다 칼로 사진전

디멘티토 2023. 4. 4. 17:24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은 헤이든 헤레라의 전기를 통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프리다 칼로는 생소한 화가였으며 국내에 나온 저작이 없었다.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헤이든 헤레라의 프리다 칼로 전기를 뛰어넘는 책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적어도 국내에 나온 칼로 관련된 책 중에서는. 르 클레지오 역시 칼로에 대한 책을 썼는데(국내에 나와있음) <홍수>를 읽은 이후로 나는 이 작가의 비대한 자아를 견딜 수 없었다. 많은 프랑스 작가들이 프랑스적인 기질을 발휘해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지만 클레지오의 칼로에 대한 책은(그건 전기도 뭣도 아니다) 자신이 상상하는 틀에 가둔 상상 속 칼로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련없이 버렸다. 헤이든 헤레라는 프리다의 삶을 충실히 그리면서도 그녀의 내면까지 깊게 파고들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전기의 훌륭함은 거기에 있다. 전기의 초반은 인물의 가족사로 채워지는데 여기에서도 칼로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프리다의 조부모 야콥 하인리히 칼로와 헨리에트 카우프만 칼로는 헝가리계 유태인으로, 독일로 이주해 바덴바덴에 정착했고 기예르모는 거기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이름은 빌헬름으로 기예르모라는 이름은 멕시코를 여행한 뒤 바꿨다. 학자가 되고싶었던 기예르모는 낙상해 머리를 다친 뒤 생긴 뇌전증으로 평생 고통 받았다. 멕시코에 정착한 기예르모에게 사진가가 되기로 권유한 것은 아내 마틸드 칼데론이었다. 마틸드의 아버지는 사진가였고 기예르모와 함께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뜻깊은 점은 전시 품목에 프리다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의 사진이 있다는 점이다. 전시회에 나온 사진은 건축 사진으로, 전기에도 나와있지 않다.

 

 

 

검색해 보니 구글에 기예르모의 사진 모음이 있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ntity/guillermo-kahlo/m07qm0j

 

길레르모 칼로 - Google Arts & Culture

Guillermo Kahlo was a German-Mexican photographer.

artsandculture.google.com

 

프리다의 가계도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데, 그녀의 외모가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침 전기에서도 이 가계도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프리다의 가장 큰 특징인 독특한 눈썹은 외탁이 아닌, 친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프리다는 어머니의 몸매와 아버지의 눈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는데 기예르모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눈빛은 프리다에게 고스란히 재현된다. 가운데 태아는 프리다가 수태되는 찰나를 그린 것이다. 그림에서 보건대 마틸드는 혼전 임신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이에 대해 전기에서는 프리다의 즐거움의 원천이었을 거라는 말을 했다.

 

 

전시회에 나온 가계도는 비슷하지만 다른 작품이 나왔다. 

 

 

기예르모는 베토벤과 요한 스트라우스를 좋아했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독서에 열중했다. 자식들과 그다지 친밀하게 지내지 않던 기예르모에게 프리다는 애착을 보인 유일한 자식이었는데, 자신의 관심사를 프리다와 함께 나눴고 이는 프리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리다가 그림에서 강박적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하는 성격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평생 뇌전증으로 고통을 받은 기예르모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프리다의 유대감은 둘을 더욱 강하게 묶었고 이는 기예르모의 사진에서 잘 드러난다.

 

 

 

기예르모 칼로의 반신상 아래에는 프리다 칼로의 글이 적혀있다.
'나는 내 아버지 헝가리계 독일 태생의 직업적 예술 사진가 빌헬름 칼로를 그렸다. 그의 성격은 온화하고 관대했으며 총명하고 섬세했다. 또한 세련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십여 년 동안 뇌전증으로 고통받았지만 작업을 그만둔 적이 없었다. 히틀러에 대항해 싸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흠모했다. 그의 딸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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