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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가가리

디멘티토 2023. 2. 5. 00:55



사이코패스 레전드 <추적자 가가리 슈세이>는 사이코패스 스핀오프로, 소설과 드라마시디로 나왔으며 가가리의 어린 시절과 집행관으로 채용되어 잠재범을 추적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과 2장은 잠재범으로 판단되어 교정 시설에 갇혀 자란 어린 시절과 집행관으로 채용되기까지 시기를 다루고 있다. 교정시설 시기는 이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접점이 이뤄지는데, 가가리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인 옆방 친구와 일화와 집행관으로 채용되어 맡은 첫 번째 임무까지 다루고 있다. 나머지 3장에서 5장까지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맡아 추적하는 내용.
드라마시디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 상권은 1장과 2장 내용을, 하권은 3장에서 5장까지.

이야기는 가가리가 아카네를 집에 초대해 자신이 만든 요리를 함께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줬는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앨리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어릴 때 읽고 어른이 되고서는 파생 작품만 봤지 원작을 본 적이 없어서 구입해서 새삼 다시 읽었다. 어떤 부분은 기억 속 그대로였고 어떤 부분은 처음 읽는 것처럼 감회가 새로웠다.
가가리는 다섯 살 때 잠재범으로 판단되어 시설에 들어갔고 들어간 지 2년 후 일곱살 때 친구를 만나 머릿속에서 두는 체스를 하게 된다. 마치 퀸스갬빗의 한 장면처럼. 그런데 시설에서 만난 옆 방 친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언급하는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다. 이는 후반부 가가리가 사이버 점술사에게 점을 칠 때 복선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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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앨리스는 지하에 떨어졌지.”
가가리: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아냐?“
친구:”응”
가가리:“떨어졌다니, 그거 참 힘들었겠네.”
친구: “그런가.”
가가리:”구멍에 빠진 것도 그렇고 떨어졌으니 큰 사고잖아.“
친구: ”그럴지도 모르겠네.“
가가리: ”당연하지.“
친구: “떨어지고 떨어지고 헤매고 헤매면서 토끼를 쫓고 이윽고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만나 게임을 하지.“

친구: “게임 싫어해?”
가가리: ”아니”
친구: “그럼, 좋아하는구나”
가가리: ”왜 그렇게 되는건데?”
친구: “그럼, 싫어해?”
가가리: ”너한테는 좋아한다, 싫어한다 외에는 없는거야? 바보아냐?”
친구: “응, 좋아한다, 싫어한다 외에는 없어. 그래서 게임을 좋아해. 너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게임 하자고.“
.
.
가가리: ”게임하자고 해도 어떻게 놀건데?”
친구: “머릿속에서 하는거야. 간단해. 너도 금방 할 수 있어. 게임기도, 소프트웨어 없이도.“
가가리: ”그래서, 어떻게 게임하자는 건데?”
친구: “아날로그 게임이라고 알아?”
가가리: ”뭐?”
친구: “전원을 켜지 않는 게임. 판을 짜서 하는 게임. 인류 역사상 수 많은 사람들이 했던 게임의 원조.”
가가리: “체스나 장기같은거?”
친구: ”정답. (중략) 컴퓨터도 인터넷도 쓰지 않아. 그래서 이런 시설에서도 할 수 있는거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머리속에서 게임을 하는거지. 머릿속에 보드가 있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해 자신의 말을 움직이는 거야”
가가리: “귀찮은데.“
친구: ”주고받는 건 입모양으로. 여긴 사람들끼리 대화하는건 금지되어 있으니까.”
.
.


친구: ”그럼 체스로 하자. 넌 흰 말로 해.“
가가리: “흰 말이 먼저 아냐? 초보라고 얕보지마.“
친구: ”괜찮겠어?“
가가리: “두 번 말하게 하지마. 입 모양 읽는 거 귀찮아.“
친구: “그럼 사양 않고 내가 흰 말로 할게. 시작한다.”

친구: “그런데 가가리, 넌 잘 안 웃는구나”
가가리:(그러고 보니 시설에 온 뒤로 웃은 적이 있던가. 만화책을 보고 따분하다, 재미없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웃었냐고 묻는다면 ‘아니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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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리: ”2연승. 너한테 두 번 연속 이기면 웃어주지”
친구: “한 번 이겼으니 또 이겨야 할 걸. 말했잖아 앨리스라고.”
가가리: ”아니, 모르겠는데”
친구: “나도 그래. 이제부터 목숨을 건 게임을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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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너하고 마지막 게임이야. 여기서 나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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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방에 있던 녀석은 어떻게 됐지? 죽었어?”
“응?”
“다른 방에 있어? 아니면”
“가가리, 그 방에는 아무도 없어. 계속 비어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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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후 어느날 기노자가 찾아온다.
가가리에게 기노자는 잔소리꾼으로 통하는데, 첫인상부터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ㅎㅎ


가가리:(누구야, 이 사람은. 시력같은 건 쉽게 교정 가능한 시대에 안경이라니, 패션 소품인가?)
”가가리 슈세이인가”
“그래. 당신이 면회자?”
“나는 후생성 공안국 형사과 1계 소속 감시관 기노자 노부치카다.”
“공안국? 거기는 잠재범을 잡아 가두는 곳이잖아. 무슨 볼일이지? 난 다섯살에 판정 받고 10년 이상 여기에 격리되어 있는 중인데.”
“집행관으로 채용하려고 왔다. 시빌라가 너에게 집행관으로 적합하다는 진단을 내렸거든.”
“집행관이라.”
“범죄계수가 규정치를 넘은 인격 파탄자나 잠재범은 본래는 격리되어야 하지. 하지만 단 하나, 허가된 사회 활동이 있어. 같은 잠재범을 쫓는 임무지. 짐승을 사냥하는 짐승, 공안국의 개. 그게 집행관이다. 잠재범으로 오래 격리된 너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보는데.”
“흠..”
“긴급 제안이라 바로 대답해야...”
“좋아. 하겠어, 집행관. 무엇보다 나를 선택했다는게 마음에 들었어.”
집행관, 그래. 후생성 공안국 형사과 1계 소속 집행관, 가가리 슈세이. 그게 내 새로운 신분.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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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권은 상 권과 마찬가지로 아카네와 함께 음식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초반 부분에 브랜디를 마시며 덴키브란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잠시 소개.

덴키브란은 가미야 바 창업주인 가미야 덴베가 만든 브랜디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이 칵테일 탄생 설은 몇가지가 있는데 가가리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전기와 전혀 관계없는 것도 아닌게, 이 칵테일이 처음 탄생한 시기가 전기가 드문 메이지 시대기 때문이다. 당시는 최신 문물에 전기를 붙이는게 유행이었는지라 브랜디에 전기를 붙여 덴키브란이 되었다. 말하자면 최신 유행의 브랜디라는 의미다. 하지만 가가리가 좋아하는 건 알코올 도수가 높아 바닥에 침전물이 생기기 때문에 덴키브란이 되었다는 설.

알코올 도수는 46도로 브랜디와 차이점이 없지만 브랜디는 아닌, 즉 브랜디 대용품이다. 사이코패스 시대는 천연 식재료가 귀해서 비싸다. 그런 의미에서 값이 싼 대용품도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고.






4장은 집행관 임무도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가가리 성격이 잘 묘사되었다.
첫 번째는 잠재범을 쫓는 와중에 일본인으로는 흔치않는 금발에 푸른 눈의 소녀를 만난 이야기로, 소녀는 토끼를 잃어버렸고 가가리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토끼는 지하로 통하는 구멍에 들어가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수색하는 장면은 본편과 연결되는데 집행관이라기보다 게임 플레이어이자 추적자라는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두번 째 이야기는 잠재범을 쫓는 와중에 어떤 지하실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깜깜했던 주위가 조명으로 일시에 밝아지는데 거기서 보게 된 것은 책장 속 엄청난 종이책이다. 그리고 액자 속 그림과 낡은 포스터,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르골. 그 부분을 읽으며 떠올린게 이퀄리브리엄이었다. 감정을 제한시키고자 책과 그림같은 예술 작품은 철저히 차단된 세계. 물론 사패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른바 예술가와 범죄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물론 이런 재미를 선사할수 있었던데에는 가가리 역을 맡은 이시다 아키라의 공이 크다. 근데 수색 작전에서 단독 행동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찾아낸 잠재범의 거처에서 찾아낸 종이책들이 본편의 마키시마 쇼고의 책 목록과 비슷하다.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텐데 그 목록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윌리엄 깁슨, J.D. 샐린저, 필립 K 딕, 조지 오웰, 루이스 캐롤. --------------------------

“이건 뭐지? 종이..책?"
"이제서야 왔군. 어서오게, 모험자여. 나는 마술사. 잃어버린 마법의 보물을 지키는 문지기다"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내용은 모르지만 제목은 들은적이 있는 것 같고. 옆에는 J. D. 샐린저, 또 윌리엄 깁슨, 필립 K. 딕, 조지 오웰. 게다가 루이스 캐롤? 이사람이 무슨 책을 썼더라?"
"그것들은 소설로도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현재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네. 말하자면 예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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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보1
-후반부 사이버 점술사에게 점을 치면서 밝혀지는 가가리 슈세이 취향
음식:키위와 매운거 빼고 아무거나
좋아하는 것: 게임과 요리
잘하는 요리: 계란 프라이를 얹은 타코라이스
좋아하는 게임: FDS, 판타지 계열
좋아하는 책: 만화(죠죠 같은)
좋아하는 영화:스타워즈(스페셜 에디션),마이클 베이. 그 중에서도 폭발신이 많은 영화
싫어하는 것: 데스크 워크
가지고 싶은 것: 신선한 천연 식재료.
취향을 통해 점 친 가가리 슈세이의 운명
- 토끼를 쫓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소한 정보2
가가리의 암호명은 하운드4다. 이 이름은 고가미가 감시관이던 시절 친구이자 동료였던 집행관 사사야마의 암호명이기도 하다. 사사야마는 사건 수사 중 사망했는데 가가리가 사사야마가 쓰던 암호명을 쓴다는 점에서 같은 운명을 걷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가리가 정말 죽었는지는 모호한데, 이와 관련해 일웹에서는 가가리 사망설과 생존설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과연 가가리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것이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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