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애거사 크리스티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그리고 뤼팽 시리즈를 즐겨 읽긴 했어도 미스터리 소설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인건 아니었다. 추리 소설, 또는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무지한 시기였다.
일본 소설은 하루키로 시작해 이런저런 책을 읽었지만 미스터리 쪽은 관심이 없었던 터라 나중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미야베 미유키의 <누군가>를 접하고 일본 미스터리에 발을 들어섰다. 그것도 내용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다 옮긴이 후기가 마음에 들어 카페도 가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본 미스터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나는 지갑이다>(원제: 기나긴 살인)>지만 스기무라 시리즈는 각별하다.
베드로의 장렬은 시리즈 세 번째 소설로, 국내에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반지가 들어간 것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소재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알다시피 베드로일 것이고. 하지만 난 원제가 훨씬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배경에 렘브란트의 <성 베드로의 부인>이 몇 번이나 나오고 우연히 타게 된 버스가 납치되는 사건을 통해 배후에 숨은 진상을 쫓는 과정에서 과거에 죄를 짓고 후회하는 인물의 상징으로 베드로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그림들이 복선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이 중요한 소재라 드라마 홈페이지에서도 설명이 나와있다.
https://www.tbs.co.jp/petero2014/commentary/commentary1.html
드라마판으로 오면 글로만 설명한 내용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실감이 나는데, 회장 비서로 나온 다카하시 잇세이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장렬은 스기무라에게 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아내 나호코와 이혼하고 사립탐정 사무실을 차려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잇세이는 나호코를 짝사랑하는 회장 비서 하시모토 마사히코로 나오는데 역할 이름에도, 배우 이름에도 성에 같은 한자가 들어있고(橋) 더구나 그게 ‘다리’라는 뜻이기 때문에 인연의 끈이 닿은 역할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불륜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면 나호코와 하시모토의 사랑은 애틋하게 그리고 있고 배우들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역시 그런 애틋함을 충족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기무라와 이혼하고 하시모토와 이루어지길 바랬는데 각자 갈길로 가서 상당히 아쉬웠다. 여사님, 불륜이라 그렇게 마무리 지으신건가요..그렇다해도 인정하기 싫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수확이라면 주제가인 곤도 다카시의 심정호흡인데 가사도 좋고 드라마 내용과도 잘 어울려서 귀에 쏙 들어왔다. 노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이후로 휴대폰에 넣는 나만의 앨범 제목을 줄곧 심정호흡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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