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성스러운 거미

디멘티토 2023. 2. 11. 23:48

영화는 2000년에서 2001년 동안 순교자의 땅이라 일컫는 이란의 성지 마슈하드에서 16명의 매춘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나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위키에는 16명에서 19명이라고 나오는데 당시 사건을 외면했던 경찰의 행태를 보면 19명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감독 알리 아바시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던 무렵 테헤란에서 학생 신분이었고 영웅으로 칭송받던 사이드와 경찰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2년 기자 미지하르 바하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nd Along Came a Spider>를 보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검색하니 마침 다큐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 사이트가 있었다.

http://www.filmsufi.com/2015/05/and-along-came-spider-maziar-bahari-2003.html

 

"And Along Came a Spider" - Maziar Bahari (2003)

The word ‘evil’ comes up constantly in our social discourse  – not only in ordinary conversation but also in the remarks made by cultural...

www.filmsufi.com

그로부터 20년 후 결심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 과정에서 그런 연쇄살인마를 만들어낸 사회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모양이다. 일반적인 민주사회라면 자연스레 품게되는 의문이겠지만 여기는 이슬람 국가다. 남자가 그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에서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이자 주인공인 리히미는 (아마도 미지하르 바하리를 모델로 하여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창조했을)가공의 인물로, 연쇄살인마뿐 아니라 여성혐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초반에 라히미는 취재를 하기 위해 마슈하드의 호텔을 예약하고 투숙하려 하지만 호텔 측에서는 라히미가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스템이 고장나 취소되었다며 입실을 거부하다 기자라고 밝히고 따져 물은 후에야 겨우 투숙하게 한다. 그렇게 영화는 이란 여성 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슈하드가 이란 최대 성지다 보니 현지 촬영이 거부되어 실제 촬영은 요르단에서 했다고.


사이드를 거미라고 한 이유는 여성들을 죽이고 나서 마치 거미가 거미줄로 먹잇감을 싼 것처럼 시신을 챠도르로 말아 유기했기 때문이다. 다큐 사이트에 따르면 그가 살인을 결심한 이유는 택시운전수가 그의 아내를 매춘부로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는데 계기같은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부분은 생략하고 사이드가 살인을 저지르고 영웅 심리에 빠져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능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사이드는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신성한 신을 대신해 사회를 정화시킨다고 믿었고 기자에게 전화해 시신의 위치를 알려줬다. 제목의 성스러운 거미는 그렇게 탄생했다. 살인 행각도 끔찍하지만 그의 광기를 용인하고 신의 이름으로 정의를 행한다며 옹호하는 사회가 더 끔찍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까. 차도르만 두르지 않았을 뿐 여성 인권이 유린되는건 별차이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사이드의 아들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다큐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인터뷰 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악을 처단하고 사회를 정화하겠다고 말하는데 20여년이 지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가 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머지않아 그의 이름을 세계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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