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둘러싼 모험

영국 미스터리 기행 - 와카타케 나나미

by 디멘티토 2019. 5. 2.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66146080881520640 중 몇가지를 정리한 것

1. 맛있는 미스터리 '티타임의 공포'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83391913062555648
이제껏 수백번 영국 티타임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그중에는 재미있는 것도 있었지만 ‘난 말이지 차에 관해서는 까다로워, 내가 경험한 티타임이야말로 최고라고, 난 영국을 속속들이 알거든’ 같은 글도 많아 짜증이 난터라 영국 여행기를 내게되면 차에 관해 쓰겠다! 고 결심했다.
먼저 차 잎은 인도산이어야 할 것. 그것도 속이 쓰릴 정도로 진해야 한다. 옅은 차는 독을 넣어도 금방 들통나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진한 차라 해도 스트리크닌(*쓴맛과 독성이 강해 살충제로 쓰이는 알칼로이드 결정이라고)을 넣으면 안된다. 너무 써서 차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찻잔을 써야 한다. 많은 영국인들이 머그컵을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상황이 달라져 카푸치노를 종이컵에 넣어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었다. 어느쪽이 되었건 목표로 한 인물의 컵에 독을 넣어야 한다. 차를 마신 회원을 독살함은 숙녀 신사가 할 짓이 못된다. 차를 다 마시고 난 후에도 찻잔과 포트를 씻어내거나 차 잎을 정원 한쪽에 버리면 안된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증거가 사라져 경찰이나 탐정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힘들게 수사하게끔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영국 미스터리에서는 다들 수시로 차를 마신다. 시체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차를 마시고, 수사 하러 왔다면서 마시고, 추리를 한다면서 마신다. 5시부터 여유롭게 티타임을 갖는 종족은 멸종위기에 처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차가 나오는 미스터리를 한 편 소개해 보자면 시릴 헤어의 <영국식 살인> 살인 자체도 영국식이지만 눈 덮인 시골의 대저택, 크리스마스. 의혹에 찬 상류계급의 사람들과 영국 액센트. 물론 잉글리쉬 포이즌으로 홍차를 마시고 죽는 사람도 나온다. 거기에 전통적인 영국식 차에 대한 이야기도. ‘한 잔의 맛있는 차’ 에세이와 같은 미스터리다.

2. 맛있는 미스터리 '피크닉에서는 무얼 먹나' (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83391913062555648
여행 기간은 대략 2주 동안. 매일 밖에서 밥을 먹으면 질려서 사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머무는 동안 두세번 정도 수퍼마켓에 가서 식재료를 사서 호텔 방에서 먹는다. 샐러드 믹스, 치즈를 얹은 크래커나 냉육. 여기에 수프 전문점에서 사온 맛있는 수프. 외식 보다 싸고 신발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먹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린다. 작가는 이걸 ‘호텔밥’ 이라고 해서 영국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삼았다고(이 얼마나 검소하냐며 ㅎㅎㅎ) 오랜시간 기차를 타고 갈 때면 사과와 크래커, 치즈 그리고 생수를 가지고 갔다. 그렇게 하면 피크닉 기분이 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고급 식품 매장에서 피크닉 요리 재료를 사서 준비하기도. 딕슨 카의 단편 <마귀 숲의 집> 의 헨리 메리벨 경과 일행은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사 온 피크닉 요리를 커다란 바구니에 넣어 간다. 옥스포드 거리, 유명한 식품점의 피크닉 세트 언젠가 꼭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안 보는게 좋을지 모른다. 다시 호텔밥 이야기로 돌아와 부부가 식재료를 사러 가는 곳은 막스 앤 스펜서. 대로변에 있고 고기가 맛있다고. 건조 베리가 들어간 시리얼이나 티백 차 등등 싸고 산지 물품을 사기도 좋다. 캐롤라인 그레이엄의 <할로우맨의 죽음>에는 조이스가 막스 앤 스펜서의 커피 필터로 커피를 만드는 장면이 있다고. 주인공 버나비 경부의 부인은 악마에 씌우기라도 한 듯 요리를 못한다. (애처가)버나비가 모두가 싫어하는 구내식당 음식도 맛있게 먹거나 막스 앤 스펜서의 텔레비전 디너를 즐기는 설정은 좀 이상했다고. 드라마화 되기도 했으며 그레이엄이 직접 각본을 쓸정도로 애착을 지닌 시리즈 다음 편을 기다린다.

3. 맛있는 미스터리 '스프 중독' (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84662355740012544 )
점심은 간단하게 먹고 싶을 때면 으레 빵과 스프를 주문한다. 이 스프가 깜짝 놀랄만큼 맛있다. 다트머스에서 먹은 얼큰한 토마토 스프도 맛있었고, 가을에 먹은 머쉬룸 스프, 포테이토 스프, 카레 풍미가 나는 치킨 스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배 고파진다. 파트너의 어머니는 요리연구가로 영국 요리에도 정통하다. 그런 시어머니께서 웨일스 산 '수프 믹스'를 부탁하셨다. 오렌지, 노랑, 초록색 렌즈 콩과 보리나 오트밀을 넣은 믹스다(*찾아봤는데 아래와 같은 상품이 떴다) 헤이온와이의 상점에서 발견해 우리들이 먹을것도 사와서 집에서 만들어 봤다. 물에 믹스 한줌을 넣고 3,40분동안 한소끔 끓인 후 베이컨과 셀러리, 양파, 당근 등 야채를 넣고 뭉근해질때까지 끓인다. 그런 뒤 소금 넣고 끝. 그러면 깊은 맛이 나는 콩수프가 완성된다. 사무엘 존슨은 '잉글랜드에서는 오트밀을 말이 먹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이 먹는다' 라고 하며
스코틀랜드 사람을 바보 취급하자 스코틀랜드 사람인 제임스 보스웰이 '그래서 잉글랜드에서는 훌륭한 말이, 스코틀랜드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나온다' 고 응수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이건 뭐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구만 ㅋㅋㅋ) 그 때문인지 보리를 넣은 이 수프믹스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아무 가게에서나 구할 수 있지만(켈트 분위기가 강한 웨일스나 콘웰도 마찬가지) 잉글랜드에서는 건강식품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브로스 믹스(Broth Mix)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아래 올린 이미지가 바로 그것 ㅋㅋㅋ) 보리를 넣은 수프를 브로스라고 부르는 모양이라고 렌즈콩 수프는 일본에도 있지만 아쉽게도 보리를 넣은 수프는 본적이 없다. 그래서 할수없이 영국에 갈 때마다 사 들고 온다. 하지만 한 번 해 먹으면 다들 중독될 정도다. 무겁게 지고 온 보람이 있다. 미스터리 애호가를 조롱한 P.G 워드하우스(P. G. Wodehouse)의 단편 중 '수프 속 스트리크닌(Strychnine in the Soup)'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수프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미국 작가 제임스 야페(James Yaffe)의 단편 '엄마는 내기를 한다' 수프를 먹은 손님이 독살 당하는사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누들수프도 맛있다고.

4. 맛있는 미스터리 '베리, 베리, 베리'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87206248658419712 )
"영국 사람들은 라즈베리를 엄청 좋아해. 라즈베리, 라즈베리, 라즈베리!"
-영화 <채링크로스 84번지(*한국에는 84번가의 연인)> 중 헬레인 햄프의 대사
8월 말 콘월의 포위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디저트 메뉴에 섬머 푸딩이란게 있어서 주문해 봤다. 베리 류를 휘감은 얇은 빵에 크림을 얹은 거였다. 달콤한 과즙을 듬뿍 머금은 빵에 스푼을 넣자 안에서 라즈베리,블루베리, 블랙베리 등 다양한 베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로부터 3일 후 9월, 보스캐슬의 호텔 메뉴에는 오텀 푸딩이 있었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두근거리며 기다린 내 앞에 놓인 것은 여름 푸딩과 똑같은 것이었다. 알고보니 이 디저트는 여름에 먹으면 섬머 푸딩, 가을에 먹으면 오텀 푸딩이라고 해서 이름만 바뀔뿐이었다. 계절에 따라 이름만 바뀌는 디저트라니 이게 뭐람. 생각해 보니 일본에도 봄에 피안(彼岸 *춘분이나 추분 전후 각 3일간을 합한 7일간) 즈음에는 모란에서 따온 보타모치, 가을 피안에는 싸리에서 이름을 따온 오하기가 있었다.
다마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오디를 굉장히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는데 같은 다마출신인 친구와 하치조 섬에 갔을 때 섬 여기저기 까맣게 영글어 있는 오디를 보고는 둘이서 아무말없이 따는 바람에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다마도 옛날에는 하치조와 마찬가지로 견직물이 특산품이었기에 오디가 흔했다. 덕분에 <초원의 집>이나 로자문드 필처의 <9월>에서 베리가 쌓여있는 장면이 나오면 오디의 농후한 달콤함이 떠오르며 침을 삼키게 된다.
여기에 걸맞은 작품이라면 J.R.L 앤더슨의 <블랙베리 채취>라는 단편을 들 수 있다. 블랙배리룰 따러간 노인이 총을 맞고 죽는다. 토끼사냥 중에 날아온 총탄에 맞은 것처럼 보였지만 베리 상태를 눈여겨 본 경부에 의해 사건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펼쳐진다. 역시 나무에서 따자마자 바로 먹는건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5.맛있는 미스터리 '버섯의 의혹'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036972509487226882
영국에는 맛있는 음식이라곤 아침뿐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나 역시 영국 아침식사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초창기에는 수란이나 훈제 청어 등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하지만 베이컨은 뇌가 절여질듯 짰고 훈제 청어는 하얀 쌀밥이 생각났다. 소세지는 양념이 과해 수제비처럼 퉁퉁 붓거나 허브를 너무 많이 넣어 약 냄새가 나거나 실패한 적이 무척 많다. 그리하여 요즘들어서는 정해진 것처럼 주스, 차, 화이트앤 브라운 토스트에 꿀이나 마멀레이드, 달걀 프라이, 구운 토마토와 버섯을 먹는다. 식욕이 없을 때는 토마토를 뺀다. 하지만 버섯은 꼭 넣는다. 달걀과 버섯만 주문하면 주방에서는 접시가 허전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이라도 쓰는지 한접시 가득 버섯이 나오는데 영국 버섯은 -특히 가을에 나오는 - 수분이 많아 촉촉하고 향이 진하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킹스 린의 호텔에서 평소대로 달걀과 버섯을 주문했을 때 나온 접시를 보고 나와 파트너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CD크기만한 큰 버섯이 접시 한가득 놓인 것이다. 우리 둘이 무척 놀라고 있으려니 웨이트리스가 플랫 머쉬룸이라며 작은 것보다 훨씬 맛있다고 가르쳐줬다.
패트리샤 모이스의 작품에도 이것과 비슷한 버섯이 등장한다. “내가 말한 버섯이 어떤건지 잘 알거야. 넓은 평지에서 자라 뒷부분이 새까만 건데 재배해서 키우는 작고 하얀 것에 비해 크기가 두 배나 되고 향기로워. 가늘게 찢은 버섯에 송아지 고기, 브랜디, 그리고 각종 허브나 향료를 넣고 천사의 머리카락이라 불리는 가는 파스타를 써서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낸다고 나온다. 이 요리가 큰 인기를 얻어 주인공이 큰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블루문이 유명해지자 누군가 맹독을 바른 버섯으로 바꿔치기 하고 큰 소동이 벌어진다. 버섯을 바꿔치는 방법은 간단하고 그럴듯한 살해방법으로 루스 렌들의 단편 ‘먹물버섯 사건’(일본판은 ‘버섯 스튜 사건’ 먹물버섯은 흔한 버섯으로 다 자라면 22센티미터 정도. 늦여름과 가을사이에 발견되며 주로 들판과 산울타리, 정원에서도 자란다. 뚜껑 부분이 벌어지기 전 먹물같은 액체를 쏟아낸 후 먹어야 한다) 영국 버섯은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 아마도.

6. 맛있는 미스터리 '따끈 따끈 감자'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011485941809082368
영국이나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식재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감자다. 영국은 주식이라는 개념이 없는 모양인지 그래도 뭔가 꼽아야 한다면 감자를 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요리를 시켜도 감자칩이나 삶은 감자가 꼭 곁들여 나온다. 전자제품으로 나온 감자 찜기도 봤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음식 중 스튜가 있다. 양고기와 양파, 당근, 감자를 넣고 푹 끓여 만든 요리로 일본으로 치면 고기감자같은 것이다. 놀라운건 이 요리를 주문하면 곁들임으로 감자칩으로 할건지 아니면 삶은 감자로 할건지 물어본다는 것이다. 감자요리에 곁들임에 또 감자라니,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패딩턴발 4시 50분>에는 '루시 아이리스베로'라는 유능한 가정부가 나온다. 루시가 일하는 저택주인은 대부호인 주제에 구두쇠라서 점심식사에 쓸데없이 감자를 많이 내왔다며 루시를 나무란다. 하지만 루시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저녁식사때 스페인 오믈렛에 넣으면 되므로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걸 계기로 늙은이는 루시에게 청혼을 하게 되는데 참으로 망측하다.
말이 나온 김에 미스터리에서도 감자 요리가 많이 나오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셰퍼드 파이다. 다진 양고기와 양파, 당근, 잘게 썬 셀러리를 볶고 그레이비와 우스터 소서로 맛을 낸다음 위에 매쉬 포테이토를 얹어 굽는다(양고기로 하면 셰퍼드 파이, 쇠고기로 하면 코티지 파이라고 한다고 함) 아일랜드의 도로 헤더스라는 마을에서 먹은 파이 맛이 잊을 수 없어 가끔 집에서 해먹는다. 영국에서는 일요일 점심은 구이 요리를 먹는 습관이 있어서 원래대로라면 점심에 먹고 남은 양고기를 이용해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냥 다진 고기로 만들어도 괜찮다.
딕 프랜시스의 <표적>에는 다음과 같은 셰퍼드 파이가 등장한다. '부엌에 들어갔을 때 개럿은 망설이며 마분지 맛이 나는 수퍼마켓 표 파이가 아닌 진짜 셰퍼드 파이에 대해 물었다. "진짜 간단한 셰퍼드 파이란 말이지, 먼저 셰퍼드(양)를 잡아야 하는거야" 개럿은 배시시 웃으며 내가 쇠고기를 다지고, 양파, 그레이비 파우더와 약간의 말린 허브를 넣는 과정을 지켜봤다 '


7. 작가후기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986101344997003264
세상에는 깊게 파는 타입과 넓게 파는 타입 두 종류 독서가 있다. 깊게 파는 타입의 독자는 마니아 또는 오타쿠라 부르며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넓게 보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정신을 발휘한다. 또한 기억력도 대체로 좋아서 딕슨 카의 모든 밀실트릭을 설명할 수도 있다.
넓게 파는 타입은, 예를 들어 크리스티의 작품에 언급된 P.G 워드하우스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고 하자. 재미있으면 다른 유머 작가 작품을 찾다가 제임스 서버의 작품을 읽고 맥베스를 다시 읽어보거나 오다시마 유시(영문학자, 연극평론가)의 세익스피어 에세이로 넘어가면서 연극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후루카와 롯파(1930년대 대표 코미디언, 편집자)를 읽게 된다. 파트너는 이 두가지 형태를 다 실천하는 엄청난 사람이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닌 중도포기파다. 하지만 미스터리 여행을 하고부터는 넓게 파는 타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미스터리를 읽은 후 배경이 된 곳을 찾아보고 같은 배경의 다른 소설을 읽고, 그 작가의 또다른 이야기를 읽고, 그리고 또..와 같은 순서를 밟으며 점점 독서 대상이 넓어진다. 깊게 파는 것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는걸 깨달았다.
영국을 가기 전까지 나는 어떤 종류의 트릭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방에 여러 사람이 있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설정을 보고선 뭐 이렇게 바보같아 하며 차갑게 안이한 작품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 가서 어떤 건물에 들어선 순간 '그 트릭이 가능한거였구나' 하며 마음속 깊이 납득하게 되었다. 어두운 건물, 높은 천정, 넓은 방이나 음향 등 일본 서민이 사는 집과는 전혀 다른 별세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 장소에 서보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그 고장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크레이그 라이스의 팬이라면 1950년대 시카고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과 경제적으로 제약을 받으므로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따지며 읽지 않는다. 게다가 진짜 재미있는 소설이나 미스터리는 그런 예비지식이 없어도 즐길수 있기에 계속해서 번역되고 살아 남는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보면 이해가 깊어지기에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둘러봤기에 소설에서 크림 티가 나오면 혀에 감기는 농후함이 되살아 난다. 드라큘라의 무대가 된 햄프스티드 히스를 가면 소설 속 음침한 장면의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독서 체험과 실제 체험이 오버랩되면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미스터리와 여행의 합체가 꽤나 재미있어서 7년 동안 몇 번이나 여행을 다녀왔고 탄생한 것이 이 책이다. 잘난척 하는 와중에 포기할 뻔하기도 하고 중요한 포인트를 훌륭하게 잊어버리기거나 질릴 정도로 헤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게 바로 우리가 했던 여행이었기에. 처음에 고상하고 지적인 여행이 아니라고 말했지 않은가. 미스터리도, 영국에도 반쯤 전문가가 된 와카타케는 가끔 반전문가 행세를 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사소한 잘못을 간파하게 되면 "크리스티의 탐정이 미스 마가렛이라니 ,무슨 소리야" 라거나
미스 마플이 런던에 산다고? 몰랐네" 하며 큰 공이라도 세운 듯 의기양양해지는 것이다. 그런 보답을 받을 때가 온 것이다!! 소심한데다 이런 기억력을 지니고 있기에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정보에 틀림이 없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와카타케 역시 스위스 치즈마냥 구멍이 숭숭 뚫린 머리를 지닌 사람이다. 어느 부분은 당치도 않은 실수를 했을터이다. 하여 먼저 사죄를 표한다 --(중략) 이 책을 집필하는 중에 파트너가 인터넷을 보던 중 큰소리를 질렀다.
"큰일이야. 스코틀랜드에 고서점 마을이 있어. 게다가 세이어즈의<'다섯 마치 붉은 청>의 무대가 된 곳이라고"
"뭐어?"
가고싶다, 이건 가야만 해!
"6월이나 7월쯤이면 시간을 낼 수 있을거야."
"그럼 가자고. 고서적과 세이어즈의 스코틀랜드 여행"
"그래"
그렇게 부부가 한창 의지에 불타올랐던 순간, 갑자기 건물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잘못 울린 것이었다(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