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최초로 미국 유학을 간 리옌시(李延禧)라는 인물이 있다. 1910년 전후 중앙연구위원장을 역임한 호적(胡適 *문학가, 사상가)이 코넬대학 농학부에 입학할 무렵 리옌시는 이미 뉴욕대학 상과학위를 받고 타이베이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적은 13살 때 이미 부모가 혼사를 정해둔 터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26살에 결혼했다. 한편 리옌시는 마흔살때까지 독신이었다. 아저씨라고 불려도 좋을 나이지만 괘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가문, 재산, 용모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타이완의 독신 귀족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
리옌시의 할아버지 리춘성은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걸쳐 타이완 최고 부자였다. 차(茶) 사업으로 재산을 일군 리춘성은 타이베이 여기저기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타이베이가 리 씨 집안의 토지권리대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셈.
청나라 시대 중산남로에는 타이베이 성벽이 있었는데 안쪽과 바깥쪽 모두 리춘성의 토지였다. 그는 타이베이 시립미술관에서 원산역 일대의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시먼딩(*명동같은 번화가 쇼핑지역)의 상가 일부 역시 이씨 집안 것이었다. 다다오청은 그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었는데 리춘성은 담수강 부근의 호화로운 서양식 저택에 살았다. 1914년에 신문에는 부식가(*현재 카이펑가)에 화재가 발생해 30여채의 건물이 탔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중 17채가 리 씨 집안 소유였다. 1896년 타이완 총독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리춘성 역시 같은 배에 타고 있었고 손주들도 함께였다.
당시 13살이었던 리옌시는 초대객으로 가장 촉망받는 손자였다. 당시 타이완 남성은 17,8세가 되면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게 보통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하여 타이완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학창시절에도 곧잘 언론에 오르곤 했는데 리옌시의 어머니는 타이베이 상류계급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펼친 인물로 일본인과 함께 다다오청에 유치원을 설립해 부원장을 지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리옌시는 에스콧 타이(*스카프처럼 폭이 넓은 타이)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스타일리쉬한 차림새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신사와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선자리도 마다한 채 아버지가 돌아가신 44살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신문에는 그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가족과 사회에 크나큰 민폐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런 한편 그가 유학을 다녀왔으므로 외국여성과 결혼했다는 둥 일본인 부인을 숨겨두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독신시절(1915년) 리옌시는 아버지와 함께 신고은행을 설립하고 사업은 절정을 맞이했다. 신고은행의 주고객층은 차 판매상으로 설립자본금은 50만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당시 타이완은 호황이라 신고은행 역시 점점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사회 정세가 바뀌면서 1922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리옌시의 입지 역시 불안해졌다. 그런 와중에 세계적인 불황이 찾아왔다. 신고은행 역시 다른 은행과 합병되어 타이완상공은행이 되었고 리옌시는 파산직전에 이르렀다. 야반도주하듯 도쿄로 간 그는 타이완상공은행 부지점장을 맡아 살게되었고 딸 뻘인 21살의 미요시 유리코와 결혼했다. 미요시 유리코는검사총장, 대법원장을 역임하고 귀족원 의원 미요시 다이조의 손녀. 1923년 리옌시는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해 타이완으로 귀국했다. 도쿄에 있을 때 리옌시는 화가 진청분을 비롯한 많은 타이완 유학생들을 후원했다.
위키에 따르면 리옌시는 1946년 타이완으로 귀국했지만 2.28 사건으로 인해 대만 정국에 실망했고 1947년 도쿄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1950년 장제스의 중국국민당에 반란죄로 선고 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 충격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운 후 1959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관련 사진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119130466320183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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