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불온한 잠>이 출간된 후 기고한 글이다.
원문은 https://books.bunshun.jp/articles/-/5116
P.D 제임스가 장편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서 사립탐정 코델리아 그레이를 세상에 내놓은게 1972년이다. 이후 마샤 뮐러(Marcia Muller)가 그린 샤론 매콘, 리자 코디(Liza Cody)의 애나 리, 새러 패러츠키(Sara Paretsky)의 V.I 워쇼스키, 수 그라프튼(Sue Grafto)의 킨제이 밀혼과 같은 여성 사립탐정이 미스터리 계에 등장했다. 나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확고한 의지를 지녔으며 프로의식을 가지고 조사를 하는 그녀들에게 매료되었다. 코델리아와 애나는 런던, 워쇼스키는 시카고, 샤론과 킨제이는 캘리포니아에서 활약한다. 언젠가 나도 대도시를 배경으로 쿨하고 멋진 여성 사립탐정을 쓰고 싶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게 하무라 아키라다. 선배들의 가르침대로 자립했고 내 조사에 적당히란 없다며 큰소리 치는, 쿨하고 멋진 여탐정 말이다.....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아키라는 일을 할 순 있어도 불운한 여탐정이다. 아키라 탓이 아니다. 무릇 탐정은 찔리기도 하고, 얻어 맞기도 하고 죽을 뻔도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작가 탓이다. 정통파 사립탐정은 모두 그래왔다. 그런 자리 한 끝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위험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수한 조사원답게 눈에 띄지 않는 아키라는 40대 후반의 평범한 일본 여성이다. 거친 폭력에 맞섰다가는 한번에 훅 가게된다. 그러니 적당히 힘든 상황을 만들어 주자고 생각했다. 집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하거나, 휴대폰을 물에 빠트리거나 수많은 바퀴벌레에 둘러싸이고 점장에게 혹사당해 감기에 걸리는 등 죽지 않을만큼 힘든 상황.
결국 아키라의 몸을 생각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그녀를 불운한 여탐정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에 또 한가지가 있다. 사립탐정 소설에서 때로 탐정보다 더 중요한게 배경이 되는 거리다. 탐정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는 풍경, 온몸으로 느끼는 바람, 아스팔트 촉감, 하수도나 화약 냄새, 혼잡함, 경적, 들이키는 음료수 등 주인공의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거리 묘사야말로 사립탐정 소설을 읽는 묘미인 동시에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행동하고 싶다고 느끼는 점이 아닐까.
하지만 아키라가 주로 걷는 곳은 도쿄 서부 다마지역의 평범한 주택지다. 아담하고 별다른 특색도 없고 풍경도 별볼일 없는 지역이다. 이야기에 역동성을 불어 넣으려 해도 주택가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역시 아키라에게 힘든 상황을 선사하자.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무라 아키라의 불운은 어쩌면 필연이다. 요즘에는 나부터 스토리를 생각하기 전에 이번에는 어떤 불운에 처하게 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자, 다음은 어떻게 될까. 그 전에 돋보기 안경이라도 사러 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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