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人人身上] 진유진의 대만이야기 1 '고현송의 다이아몬드 도난사건'

디멘티토 2019. 4. 30. 16:01

원제는 <人人身上都是一個時代>로 저자는 진유진(陳柔縉) 찬로진으로 발음해야 할 듯 싶지만 그냥 한자발음대로.

일본에는 <일본 통치시대의 대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아마노 겐타로 번역.

진유진은 1964년 대만 운림(원린) 출신으로 정치부 기자를 거쳐 현재는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

-목차는

1장 일본통치시대의 대만과 사람들,

2장 모더니즘 대만의 사건부,

3장 도쿄에서 탐구하는 대만사.

사진과 에피소드로 보는 1895년~1945년까지 시기를 담고 있다.

 

19세기 남아프리카에서 광맥이 발견된 이후 다이아몬드는 왕가나 귀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행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광맥을 채굴 하기에 이르렀다 . 20세기 전반 대만에는 그와같은 유행은 없었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채굴 붐 덕분에 아무곳이나 땅을 파면 석탄이나 금이 나올거라 믿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1918년에는 기시다라는 일본인이 아리산에서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퍼졌는데 소식에 놀란 총독부가 실태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실제로 조사해 보니 기시다 역시 광맥같은건 찾지 못했다. 즉 대만에 다이아몬드 광맥은 없었던 것.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다이아몬드의 친숙한 존재로 알려지며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당시 대만에서 다이아몬드 관련된 충격적 뉴스는 고현송이라는 부호의 저택에서 발생한 도난사건이었다.

1921년 7월25일, 대만 명사들이 대도정(*청대 말기에 번영했던 무역항으로 당시 대만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의 극장에 모였다. 총독부 제2인자의 퇴임식 파티가 열렸던 것이다. 당시 대만인 상인들 중 1인자로 꼽혔던 고현송 역시 파티에 참석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고현송에게 다급한 정보가 날아왔다. 록항 저택에 있는 다이아몬드와 진주, 금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보석은 당시 시가로 이십만원 정도의 가치였다고(현재 따지면 약 4,5억원 정도) 고현성은 다음날 아침 가장 빠른 교통편인 증기 기관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관련 사진은 https://twitter.com/dimentito/status/1118317299977506816 에서)

즉시 경찰을 불러 수색을 펼쳐 보석함을 찾긴 했지만 이미 텅 빈 상태. 수사 진행이 더딘 가운데 안좋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고현송의 큰 딸이 연인에게 6천원 정도의 돈을 빚졌고 그 남자를 끌어들여 보석을 훔치게 한 뒤 외부의 소행으로 꾸몄다는 것이다.

당시는 자유연애 시대가 아니었기에 연인이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는데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까지 받게 되자 분노에 찬 고현성이 반론을 가했다.

'고씨 가문은 유서깊은 집안으로 품행이 방정한 큰딸은 집 밖을 나가는 일조차 드물다, 또한 보석이나 현금 관리를 맡고 있기에 굳이 훔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어째서 현금이나 금이 아니라 돈으로 바꾸기도 힘든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훔친 것인가.'

이에 신문기자들은 동정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소문은 늘 이렇다. 도대체 누가 퍼트린 것인지도 알수없다. 대만 속담 중 '거짓말을 하는데엔 밑천이 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와같은 상황이었던 것.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기룽에서 방을 빌리고 싶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행동거지가 수상쩍어 경찰이 조사해 보니 방에 금, 은, 보석이 숨겨져 있었을 뿐 아니라 고현성 저택에 잠입한 도둑이었음이 밝혀졌다. 남자는 록항 출신의 소매림으로유명한 부잣집들만 골라 도둑질을 한 전력이 있었다. 신문에는 '대도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리고 소매림은 징역 3년형을 언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고현송 저택에서 훔친 보석은 타이베이에서 이미 팔아버린 뒤였다. 다이아몬드는 여러 사람 손을 거쳐 다른 지역 어떤 부인의 반지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