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은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 >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파졸리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파졸리니> 에 따르면, 살로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도에 위치한 도시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살로라는 이름에는 이탈리아의 암울한 역사가 담겨있다. 1943년 무솔리니를 체포한 연합군은 무솔리니의 뒤를 이어 새로운 총리로 피에트로 바돌리니를 내세웠다. 바돌리니는 이어 휴전 협정을 체결했고 이를 배신 행위로 간주한 독일이 무솔리니를 탈출시키고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을 수립한 곳이 바로 살로다. 그렇게 탄생한 살로공화국은 독일군을 지지했고 공포 체제에 돌입했다. 이 시기 독일군은 770명의 주민을 학살했고 파졸리니는 영화에서 도로 표지판을 등장시켜 배경이 살로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살로는 세르조 치티가 기획한 것으로, 치티는 파졸리니에게 검토 및 감수를 의뢰했으나 검토하는 중 흥미를 느낀 파졸리니가 직접 찍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치티는 각본 작업에만 이름을 올렸다.
사드가 <소돔 120일>을 집필한 때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785년이다.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사드는 화장실 휴지와 각종 종이 조각을 모아 만든 종이 묶음에 깨알같은 글씨를 써내려갔다. 몇 개월에 걸쳐 광적인 집념으로 쓴 결과 종이묶음의 분량은 상당했다.
혁명 직전 사드는 정신병원으로 이감되었는데 개인 물품은 일절 휴대하지 못하는 통에 원고는 감옥에 방치된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고는 애서가의 손을 거쳐 1904년 첫 인쇄본이 나왔고 1920년대 끝무렵 특별한 인연으로 제한적으로 출간되었다.
루이스 부뉴엘은 거기에 영감을 받아 <황금시대>라는 무성영화를 찍었다.
*검색을 하면서 스틸컷을 보니 익숙하다 싶었는데, 예전에 초현실주의 전시회에서 살바도르 달리 코너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게 기억이 났다. 때마침 달리 역시 이 영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드의 <소돔120일> 이 편집을 거쳐 일반 독자에게 공개된 것은 1953년. 일본에서 완역판이 나온 것은 2002년(그 전에 출간되긴 했다), 국내에는 2018년에 사드 전집 두 권으로 나왔고 <사드 전집 2 :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파졸리니는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네 명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살인도 서슴치 않는 성적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사드가 권력자 입장에서 참극을 바라본다면 파졸리니는 철저하게 희생자 입장에서 바라본다. 또한 사드의 작품이 모성에대한 강렬한 증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반면 파졸리니의 등장인물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 회귀하는 꿈에 갇혀 있다. 이는 평생 어머니와 집착에 가까운 유대관계를 이어온 파졸리니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야기 구조는 단테의 <신곡> 을 바탕으로 하여 지옥의 문, 기벽의 장, 똥의 장, 피의 장 네 개로 이뤄졌다.
엔초 시칠리아노는 평전에서 파졸리니가 살로를 통해 절멸에 대한 신비를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는 작품에서 인용한, 죽음보다 탄생이 더 끔찍함을 보여준 조르주 바타유를 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영화 시작 부분에서 파졸리니는 몇몇 책을 열거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 <사드 푸리에 로욜라>
시몬 드 보부아르 <악덕의 번영>(사드는 유죄인가)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우리 이웃 사드>
필리프 솔레르스 <글쓰기와 한계의 경험>
시칠리아노의 말대로 살로는 폭력을 선동하는 나치-파시스트 정신의 비판적 에세이인 동시에 섹스와 죽음의 죄일 것이다. 자신의 소설 <폭력적인 삶>처럼 살아온 파졸리니는 죽음에 대한 열망으로 밤마다 거리를 방황하며 스스로를 무방비하게 노출시켜 끝내는 죽음에 이르렀고,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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