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신문에 실린 수필. 원본은 https://www.nikkei.com/article/DGKKZO61381320Q0A710C2BE0P00/
내가 태어난 곳은 사이타마 현 구키 시에 있는 어머니 친정이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나빴던 어머니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두 살 된 딸(나의 누나)을 데리고 구키 시에 있는 외삼촌 댁에 몸을 의탁했다. 거기서 돌아가신 오빠 가족(미망인과 아들 둘)과 함께 살았다. 그 오빠가 서른세살에 요절한 소설가 나카지마 아츠시다. 여동생이라 해도 어머니가 달랐고 나이차도 14살이나 되었다. 아츠시는 의붓어머니와 관계가 썩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나이차 나는 여동생은 무척 귀여워했다고 한다.
나무로 둘러싸여 녹음이 짙은 집에서 아츠시는 두살부터 여섯살까지 유소년기를 보냈고, 나 역시 태어난 후 초등학교 2학년 여름까지 지냈다. 1940년대에 걸쳐 치쿠마쇼보에서 전집이 나오기는 했지만 나카지마 아츠시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태는 아니었다. 대표작 <산월기>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무렵이기도 하다. 일본문학 전집을 편성할 때 같은 요절 작가인 가지이 모토지로와 묶인 마이너한 존재였다. 아츠시와 같은 해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 마쓰모토 세이초, 오오카 쇼헤이가 유명해진 것을 본 어머니가 "오라버니가 10년, 아니 5년만 더 살았더라면" 한숨을 내쉬며 읊조리는 것을 나는 몇 번이고 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까지 살았더라면 신약 덕분에 천식이 나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아직 어렸던 나는 외삼촌이 작가였던 일이나 어머니가 아버지와 별거할 수 밖에 없었던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는 모른 채 녹음이 우거진 집 뜰을 탐색하곤 했다. 당시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 측근이기도 했던 아츠시의 삼촌 나카지마 히타키 일가가 별채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이에게 있어 수수께끼로 가득했던 집을 구키 시가 가치를 깨닫고 보존하려 했다면 지금쯤 '나카지마 아츠시의 성지'가 되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오래 전에 해체되었다.
내가 사는 곳과 구키시가 가까워 가끔 태어난 곳을 찾아간다. 도시화가 더뎌서 옛날 모습이 아직 남았지만 약국으로 변한 그곳에 지금은 아츠시의 할아버지이자 한자학자인 나카지마 후잔이 임종한 곳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나카지마 아츠시 연고지' 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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