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책 속 한구절] 치아키의 해체원인 - 니시자와 야스히코

디멘티토 2022. 4. 5. 11:43

-2015년 작성해 뒀던 걸 옮기고 덧붙임

 

"미국은 정말 재미있는 나라야. 문화든 문학이든, 전통이 없는 만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으로 보충하려고 하잖아. 그 창조열의 부산물로 그런 부정적인 인간성이 불거져 나오는 것을 보면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그 나라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존 베리먼도 그렇고 실비아 플러스도 그렇고."

"문학자가 파탄에 이르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

치호는 태연한 얼굴로 거칠게 내뱉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공연한 의의를 두기도 하지. 단순히 타락했을 뿐인데, 추함의 미학이라며 거드름을 피운다든가. 사상 철학의 승화라든가, 사랑과 신뢰의 좌절이라든가, 이지(理智)의 패배라든가. 그에 비하면 베리만이 알코올로, 플라스가 자살로 돌진한 그 무의미함이란."

"닷쿠가 허무주의자인 줄은 몰랐네."

"아니, 아니야, 다카치. 이건 허무주의와는 아무 상관없어. 그런 무의미함의 동력 같은 것을 육체노동으로 승화하는 것이 지극히 미국답다, 그런 의미일 뿐이야."

(중략)

"엄청 졸려 보이네. 밤에 놀러 다녀?"

"<율리시스>를 읽고 있어."

"제임스 조이스가 쓴 것? 그게 무슨 수업 교재였던가?"

"아니, 단순히 개인적인 흥미. 주인공인 청년 시인의 하루 동안에 걸친 의식의 흐름을 완독하는데, 정말 24시간이 걸리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중략)

 
"땡이야. 11시간에서 좌절했어. 다음에는 버지니아 울프의<댈러웨이 부인>으로 할래."

                                                                                                                                            -제5인 해체 수호(143~145쪽) 중에서

 

 

 

-네이버 백과 사전에 따르면 시인 존 베리먼(John Berryman, 1914년~1972년)의 삶은 로버트 로웰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나온다(물론 나는 베리먼도, 로버트 로웰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유사한 부분이라는 건 명문 출신으로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을 따랐다는 부분일 것이다.

베리먼은 <꿈 노래(Dream Songs)>에서 헨리라는 괴이한 자전적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인 교편 생활, 만성 알코올 중독, 야심 등에 대해 회고하고 시어도어 레트키처럼 민담, 동요, 상투어, 속어 등의 구문으로 활기를 더해 유연하고 쾌활하며 동시에 심오한 스타일을 개발했다고.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 1972년 대학 구내 다리에서 뛰어내려 충격을 안겨줬다. 실비아 플라스는 사랑의 실패와 생계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해 충격을 주었다. 베리먼에 비해 플라스의 자살 방식은 좀 더 충격적이다.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영미 문학 인용을 하며 비꼬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는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비판한 버지니아 울프를 엮어 이죽거리고 있다. 이런 유머가 때로는 지나칠 때도 있지만 동시에 니시자와이기에 발휘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