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화대왕(원제 我是漫畫大王)>은 2013년 제3회 시마다 소지 수상작으로, 저자인 후제(胡杰)는 1970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대학교수를 역임하며 추리소설 집필을 시작했고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 해의 수상자는 두 명인데 또다른 수상작 원샨의 <역향유괴>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다.
위키에 따르면 후제는 좋아하는 작가로 시마다 소지, 아비코 다케마루, 오리하라 이치, 슈노 마사유키, 애거사 크리스티, 앤서니 버클리를 들었다고. 대만에서 쓰는 필명은 胡杰이지만 일본 번역서는 胡傑로 표기했다(동음동의어)
12장부터 시작하는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학생 루쥔옌(盧俊彦)은 집을 나와 학교에 가려는 찰나 맞은 편에 사는 부인과 마주친다.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한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나서려다 집안으로 들어간 부인의 비명소리를 듣고 맞은 편 집으로 간다. 거기엔 남편이 살해된 채 쓰러져 있었고 어린 아들은 방에 갇힌 상황. 루쥔옌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 사건을 조사하면서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두 시점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젠(健)과 나머지는 팡즈훙(方志宏)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젠 이야기는 1970년생인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봐도 될 것이다. 팡즈훙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만화를 몰수당하고 무력감에 빠지며 급기야는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 트라우마 탓으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 하지 못했고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떠돌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학교 선배에게 치료법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실험에 참가하게 된다. 하여 자신이 트라우마를 입게 된 시절과 똑같은 환경을 조성한 뒤 아들을 방에 가두고 외부와 접촉을 금지하고 자신이 살던 시대임을 주입시킨다. 과거의 시간을 재현하기 위해 꾸민 집에서 작업을 할 수 없었던 팡즈훙은 작업실을 따로 얻어 경매 사이트에서 자신이 봤던 만화를 구입해 순차적으로 아들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아들과 그 시절 만화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려고 했던 것이다. 구성 상 특이점으로 인해 11장 뒤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 역시 후반부에 나온다.
읽은 후 일웹에서 감상들을 죽 살펴보다 트위터에서 구독하는 계정인 후쿄기담클럽의 블로그 해설을 보게 되었는데 두 편에 걸쳐 생각치 못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몇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블로그에 따르면 저자 후제는 코멘트에서 일본 만화는 자신의 어린 시절 그 자체였고 당시 별명이 젠(여기서는 젠짱이라고 나온다)이라 했다고.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아들을 이용하는 팡즈훙의 광기에 찬 일련의 행동으로 이는 마지막 한 줄에서 완성되는 서술 트릭을 위해 쌓아올린 것이라는 점이다. 이 트릭은 미스터리 측면에서 보면 비교적 흔한 기법이지만 일상이라는 배경 하에 쓰였기에 간파하기 쉽지 않다. 즉 일상과 트릭의 격차가 소설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것.
fukyo-murder.hatenablog.com/entry/2016/08/20/1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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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줄에 대한 지적.
후제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엘러리 퀸의 <최후의 일격>을 들었는데, 등장인물의 한마디로 진상이 뒤바뀌며 끝나는 형식은 이 작품에서 빌어온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만화대왕의 마지막 대사는 이상하다. 이에 블로그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친자식을 11년에 걸쳐 방에 가두고(창문도 모두 막아 완전한 밀실 형태가 된다) 30년 전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팡즈훙의 광기인만큼 이야기는 과거에 묻혀 살아가는 남자의 파라다이스 로스트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낙원을 붕괴시키는 순간 막을 내려야 한다. 만화대왕의 마지막 한 구절은 <최후의 일격> 결말과 같지만 이는 독자를 향한게 아니라 아들에게 향한 것이다.
휘(諱)라는 개념이 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고' '부르는' 행위는 인격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여 옛부터 군주와 부모 이외의 사람이 본명을 부르는 걸 피해왔다. 부모가 부르는 이름이 그 사람 자체라고 하면 여기서 젠은 팡즈훙임을 고백하는거나 마찬가지다(마지막 한 줄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던 쉬자위가 "그렇지, 젠. 아니, 별명은 그만할까. 정식 이름으로 부르는게 좋겠지, 팡즈훙!" 으로 맺는다) 말하자면 11년 인생은 모두 빌어온 것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아들에게는 인격도 삶도 주어지지 않았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팡즈훙의 아들은 단 한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한편 팡즈훙의 낙원을 파괴하기 위하여 나타나 아버지를 죽이라고 부추기는 팡즈훙의 친구 쉬자위(許家育)는 아담과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이려는 뱀을 뜻한다. 결말에서 아들의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 팡즈훙 집에 찾아온 쉬자위는 오렌지를 먹는데 이는 서양 종교화에서 원죄를 상징하는 과일 중 하나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인 오렌지 나무는 타락하지 않은 고결함의 상징으로 천국에서 자라는 나무를 상징하며 아담과 이브가 먹은 금단의 열매 또한 오렌지로 해석하고 있다. 오렌지가 아니라 사과로 보는 해석은 라틴어에서 '사악한' 과 사과 둘 다 malus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오렌지를 Sinnasappel 이라 부르며 플랑드르파나 라파엘전파의 회화에서는 금단의 열매를 오렌지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보면 낙원이 붕괴한 후 팡즈훙이 아들에게 찔려 죽는 것 또한 예상치 못한 비극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는 아들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게 한 팡즈훙의 의지로 봐야하지 않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젠이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씩 열거하는 중 반복해서 언급되는 <마징가 Z> 다. 마지막 회에서 마징가 제트를 도와주러 온 그레이트 마징가 제트를 만든 겐조 박사는 마징가 제트를 만든 가부토 주조 박사의 아들로, 실험 중 사고로 중상을 입어 목숨이 경각에 처했다. 주조 박사는 사이보그화 수술로 아들의 목숨을 이어간다. 즉 겐조는 아버지 주조가 만든 로봇이라는 점에서 마징가 제트는 겐조의 또다른 자아이기도 한 것이다. 마징가 제트의 마지막회를 겐조 박사의 시점에서 살펴보면, 아버지가 만든 로봇을 버리고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아버지 살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블로그 이야기는 이쯤으로 해두고.
프로이트는 <종교의 기원>의 '토테미즘으로 회귀'에서 아버지 살해를 토테미즘 종교와 연결짓고 있다. 그에 따르면 토테미즘 종교는 아들들의 죄의식에서 생겨난 것으로 아들은 토템 동물을 아버지 대용으로 본다. 아버지 대용인 동물과 관계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죄의식을 삭이고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템 체계는 아버지와 계약인 셈이다. 계약에서 아버지는 자식을 보호하고 배려하겠다고 약속하고, 자식은 아버지의 목숨을 존중해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아버지 콤플렉스에 깃든 양가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승리의 기억을 유지하는 역할도 맡고 있기 때문에 복종이 유예되며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그렇게 바뀐 삶의 조건은 토템 동물의 제물화를 통해 아버지 살해를 번복하는 의무로 주어지며 후대로 갈수록 이는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태로 변형이 된다. 그리고 승리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아버지 살해를 야기시킨 충동이다.
충동으로 그친 팡즈훙의 아버지 살해는 아들을 통해 실현되며 반전을 이루는 트릭으로 성립된다. 동시에 이야기의 완성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12장은 시작인 동시에 끝이다. 쉬자위의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알게 된 이름없는 아들은 계약을 파기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승리를 쟁취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철저하게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출산 도구와 목격자로 쓰일 뿐 별다른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 주변인으로만 머문다. 현재 일본에 번역되어 나와있는 시마다 소지 상 수상작은 총 다섯 편으로 역향유괴만 빼고(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나머지는 가족 이야기다. 대만 미스터리를 많이 접한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가족주의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는데(우밍이를 보라), 가장 가족주의적 성향을 선보이는 작가는 미스터 펫이 아닐까 싶다. 만화대왕 역시 가족 이야기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일그러진 관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가족에 어머니는 제외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 떠오르기도 했는데(마침 좋아하는 작가로 들었고) 몇몇 부분은 거기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본격 미스터리를 접하며 신경이 쓰이는 것은 형식에 치우쳐 윤리적 측면이 매몰되는 점이다. 사회파 같은 경우 고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잔혹한 범죄라 하더라도 허용 범위가 크다. 하지만 본격은 설정과 트릭에만 엄격할 뿐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점점 파격적인 설정으로 나아가게 되고 윤리성을 망각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재미만 추구하다 보면 그런 경계가 애매해진다. 따라서 어느정도 경계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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