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반말투, 존칭 생략, 의역 및 오역 주의.
단편 원작 영화는 각색이 재미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듣고 영화화 된 다섯 편이 원작과 어떻게 다른지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탐색한다. 먼저 무라카미가 기쁘다는 감상을 남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부터.
-원작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접한 건 언제였나
하마구치: 처음 읽은 건 삼십 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분슌에 실린 걸(*2013년 12월호)추천해줘서 읽었는데, 연기가 주요 소재란 점과 이야기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 이제껏 내가 다룬 이야기와 비슷했다. 당시 나한테 무라카미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건 현실미가 전혀 없었는데 이건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제작자가 처음 기획한 작품은 다른 단편이었다.
하마구치: 제작자인 야마모토 데루히사는 하루키 마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맨처음에는 무라카미의 다른 단편을 제안했다. 그래서 검토를 해봤는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드라이브 마이 카가 떠올라서 그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포인트1 셰에라자드와 기노는 왜 덧붙였는가.
-드라이브 마이 카는 단편이라 영화로 만들려면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셰에라자드’와 ‘기노’가 덧붙여졌는데 구상 단계에서 다른 부분도 확장시켰나.
하마구치: 무라카미에게 영화화 해도 좋겠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단계에서 현재 영화에 가까운 구조가 되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면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가장 큰 포인트는 이야기 안에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기에 다른 세계를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막대한 예산을 쓸 수 없는 영화에 있어 중요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라카미 소설의 매력은, 특히 장편은 우물을 파듯 현실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는 이계까지 파고 내려가는 듯한 감각에 있다. 그런 요소가 셰에라자드와 기노에 내포되어 있기에 두 작품을 빌어오면 장편처럼 전개되는 세계관에 근접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포인트2 원작에서 그리지 않은 미사키의 이야기가 독자적으로 전개되는 이유
-원작에서는 바가 ‘기노’에 나오는데 영화에서 바뀌었다. 그럴 필요가 있었나.
하마구치: 그렇다. 드라이브 마이 카만 영화로 만들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긴 시간 영화를 보는 관객 성에 차지 않을테니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종착지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여자 없는 남자들>을 다시 읽어보니 기노에 해결책이 있었다. 지적한 대로 기노의 세계관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연결되어 있고 주인공 상황도 겹친다. 쓰인 순서대로라면 드라이브 마이 카 쪽이 먼저겠지만 <여자 없는 남자들>을 쓰는 동안 무라카미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난 부분을 기노에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가후쿠가 다다르는 장소로 가져왔다.
-셰에라자드는 가후쿠의 아내 오토의 세세한 부분을 보완하는 형태로 가져왔다.
하마구치: 아내의 인물상을 입체적으로 그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아내가 남긴 무언가를 다카쓰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셰에라자드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언가는 이야기며 섹스와 연결시켜야겠다고.
-그렇게 해서 두 개의 단편이 쓰였다는 건가. 한 편 미사키 이야기는 영화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된다.
하마구치: 미사키 이야기를 확장시킨 이유는 원작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이고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무라카미가 쓴 작품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매력을 고스란히 영화로 가져오고 싶었다. 보통 배우에게 캐릭터에 대해 설명할 때 뒷 이야기를 해주는데 각색할 때 그대로 썼다.
-미사키 이야기가 무라카미의 다른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하마구치: 가와이 하야오와 대담집인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에서 원래 이야기는 현실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도 하고 억압된 무의식이 현실에 나타나는 한 형태로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미사키의 뒷이야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게 아닐까 싶다.
포인트3 바냐 삼촌, 가후쿠의 애마 사브900, 원작과 영화는 이 부분이 다르다.
-체호프의 ‘바냐 삼촌’은 원작에서도 가후쿠가 연기하는 연극 대본으로 쓰였는데, 영화에서는 다언어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길게 그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냐와 조카 소냐의 관계는 가후쿠와 미사키의 관계와 중첩되면서 극 중 극으로 전개된다. 바냐 삼촌을 통해 가후쿠와 미사키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마구치: 그 점은 본래 원작에서 의도한 대응관계다. 미사키는 소냐의 “어째서 나는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대사에 자기 자신을 대입시킨다. 가후쿠 역시 “난 이제 마흔 일곱이야. 예순에 죽는다고 하면 앞으로 십삼 년을 살아야 해.” 라는 바냐의 대사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원작에서 배경으로 묻혀 있던 부분을 영화에서 확장시켰다. 미사키가 바냐 삼촌 연극을 관람하는 장면으로 만들면 두 관계가 잘 드러날 것 같았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가후쿠의 차가 노란색 사브900 콘버터블인 반면, 영화에서는 빨간색 사브900 터보 선루프 형으로 바뀌었다. 그 쪽이 풍경에 녹아들기 때문인가.
하마구치: 그렇다. 풍경은 기본적으로 녹색이 많기 때문에 빨간색이 돋보인다. 보색이니까.
-차 안에서 가후쿠가 앉는 자리는 원작에서는 조수석인데 영화에서는 뒷자리로 바뀌었다. 이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마구치: 운전수가 차로 누군가를 이동시킬 때는 대개 조수석이 아니라 뒷자리에 앉힌다. 그렇다는 말은 운전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자리가 편하다는 의미다. 그런 점이 의외로 크게 작용한다. 처음부터 조수석에 앉는건 지나치게 가깝다. 조수석에 앉는 관계는 약간 다른 의미를 띄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맞춰가자 싶었다.
-그런 변화는 글로 묘사된 부분이 실제 인물과 풍경으로 옮겨질 때 필연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겠다.
하마구치: 그렇다. 원작이 캐릭터 내면을 파고드는 형태로 쓰여진 반면, 영화에서는 그런 정보를 전혀 내주지 않는다. 관객이 캐릭터의 내면에 흥미를 가지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끔 배치했다.
포인트4 고지의 대사는 왜 거의 변함없이 원작 그대로 쓰였는가
-다양한 부분이 각색 되었는데, 다카쓰키가 가후쿠에게 “진짜로 타인을 알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깊숙이 파고들어 똑바로 봐야겠죠.” 를 포함한 긴 대사는 원작 그대로 가져왔다.
하마구치: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인상깊게 남은 장면이었다. 원작에서 그 말을 들은 가후쿠는 ‘다카쓰키라는 인간의 심오하고 특별한 장소에서 그러한 말들이 떠오르는 듯 했다. (중략) 그의 말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들렸다.’ 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곳으로 스며드는 느낌으로 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대사는 흐트러짐 없는 울림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느낌은 대사를 말하는 배우에게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영화에서 오카다 마사키가 정말 멋지게 연기했다.
포인트5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 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영화를 보면서 대사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장면 자체가 인상깊게 찍혔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에서 바에서 차로 이동하는, 즉 대사를 말하는 장소가 바뀌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인가.
하마구치: 그 말을 차 안에 있는 미사키가 들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관객이 마지막 도약을 포함해 전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카쓰키와 가후쿠의 대화를 미사키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 대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무라카미 작품을 영화화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하마구치: 이번 영화는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많이 보완했지만 무라카미 소설에서 그려지는 이세계 같은 장면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건 힘들다. 무라카미의 글에는 현실에는 없지만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리얼리즘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판타지적인 느낌으로 그리기에는 영상은 부족한 면이 있다. 내면의 변화가 생겼다는 확신이 드는 강도에는 절대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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