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대담] 아리스가와 아리스X기타무라 가오루

디멘티토 2022. 4. 5. 11:39

 

 

-2018년에 작성

 

과연 <점과 선>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인가

 

출처 원문: 분슌 온라인 -올 요미모노 2월호

 

 

본격 미스터리 작가가 이야기 하는 마쓰모토 매직

 

기타무라:  오늘은 같은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서 아리스가와 씨와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이야 마쓰모토 세이초를 훌륭한 작가라 여기지만 중학생 시절 처음 읽었을 때는 격한 분노를 내뿜었습니다.

 

아리스가와: 시작하자마자 치고 들어오시는군요 (웃음)

 

기타무라: 도서 대여점에 가니 <점과 선>이 있더라고요. 출간될 무렵부터 상당히 화제가 되어서 제목은 알고 있었기에 이게 그 <점과 선>인가 하며 빌렸습니다. 저는 그 무렵 아유카와 데츠야 선생의 작품으로 미스터리를 처음 읽게 된 본격 초짜였거든요. 그래서 <점과 선>을 읽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내던지고 싶었습니다. 대여점 책이니까 차마 그럴수는 없었지만요 (웃음)

 

아리스가와: 저도 <점과 선>을 중학생 때 처음 읽고는 실망했습니다. 저역시 그즈음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게 된터라 미스터리는 화려한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가 정수라고 생각했는데 <점과 선>에는 그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처럼 일컬어지니 너무한거 아닌가 싶었지요. 그래서 분슌문고로부터 <점과 선> 해설을 부탁받았을 때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조우인가 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의 제자신에게 장래에 미스터리 작가가 될거라고 말했다면 '뭐? 진짜?' 라는 반응이었을테지만 장래 점과 선 해설을 쓰게 될거라고 했다면 장난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 유명한 '4분간의 공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타무라: <점과 선>의 골자를 설명하자면, 부정부패 사건에 거론된 모처 과장 대리 사야마와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후쿠오카시의 가시이 해안에서 나란히 죽어있는게 발견됩니다. 정사인가 싶었는데 지역 노형사가 의문을 품게 되죠. 제가 분개했던 이유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열차에 타야하는데 형사라면 당연히 그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하거든요. 요즘에는 시대 탓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전혀 아닙니다. <점과 선>이 단행본으로 나온 쇼와33년(1958년)에도 금방 생각할 수 있었어요. 

 

아리스가와: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그 가능성을 염두해 두어야 하는데 전혀 깨닫지 못했죠. 전전 소설에도 선례가 나와 있는데.

 

기타무라: 그런데 제가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유명한 '4분간의 공백' 입니다. 사야마와 오토키의 사체가 발견되기 일주일 전 두 사람이 도쿄 역에서 특급열차 아사카제에 타는게 목격됩니다. 사건을 쫓는 미하라 경부보는 목격자들이 서 있던 13번 홈에서 15번 홈 사이에서 아사카제가 보이려면 13번과 14번에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 4분 동안뿐이란 걸 깨닫습니다. 그걸 '4분간의 공백'이라고 하죠. 이건 알리바이 공작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4분간의 알리바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희안해요. 정확히는 '4분간의 목격' 이지만 미스터리적인 기묘한 흥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 입장에서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패가 될 부자연스러운 일을 해야할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트릭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죠. 목격 장면을 넣고 싶었다면 좀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세이초 선생이 그 부분에 대해 반론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시 제가 가장 의문이었던 점은 이건 등장인물이 하고 싶은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작가가 목격 장면을 넣고 싶었던 거죠. 그 지점에서 이야기로서 파탄이 난겁니다.

 

아리스가와: 동의합니다. 4분간의 공백은 편집부에서 제공한 단편 지식을 끌어다 쓴 거겠죠.

 

기타무라: 범인은 4분간의 공백을 특별히 의식하진 않았어요. 수사측에서 작위적인 의문을 품게 되는 운명을 타고 나 전면에 나서게 된거죠. 결과적으로는 잘 나왔지만 원래부터 그렇게 쓰려고 했던 건 아닐 겁니다. 4분을 두고 범인과 수사측의 해답 찾기 공방이 벌어지는 상황을 세간에서는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뒤로 몇 년 동안 세이초 작품을 접하지 않았고 훌륭함을 깨닫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각표 트릭은 <점과 선> 전에도 존재했다

 

아리스가와: <점과 선>을 시각표 트릭의 효시라고 일컫습니다만 이것도 사실 오해입니다. 전전 작품에 아오이 유(蒼井雄 1909~1975년 추리작가)의 <후나토미가의 참극> 이 있었고 아유카와 데츠야의 <페트로프 사건>이나 <검은 트렁크> 도 <점과 선>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기타무라:  쇼와38년(1963년) 잡지 <옥석> 마쓰모토 세이초 특집에서 나카지마 가와타로 선생은 <점과 선>에 대해  "그렇게 썼다면 역시 3천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이나 서민의 마음을 대표했기에 10만에서 20만이 된거다"  라고 합니다. 즉 추리소설 독자는 3천명 밖에 없지만 <점과 선>은 미스터리를 읽지 않는 독자층까지 아우르는 작품임을 지적한 겁니다. 읽고 무서워서 견딜수 없었다는 사람의 말도 이해가 됩니다.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 틈에서 작은 인간이 짓눌리는 공포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트릭 따위는 어찌되건 상관없다는 점이 일반 소설 독자에게도 받아들여진 겁니다.

 

아리스가와: 탐정 소설 작가나 팬들의 규모가 그 정도였다면 그런 트릭은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대중적일 수 있었던 거죠. 이쯤해서 드는 의문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과연 트릭을 경시했는가 아니면 좋아했는가 입니다.

 

기타무라: 그렇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세계>에서 미요시 도루는 "세이초가 요미우리 신본격 시리즈 감수를 맡았던 시절 (중략) 주제나 구상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로 넘어갔지만 트릭이나 플롯(또는 결말)에 대해서는 뭔가 부족하다, 한번 더 비틀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그때까지 나는 세이초는 테마 존중파이지 트릭 존중파는 아니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이 의외였다." 라고 쓰기도 했죠.

 

아리스가와: 신본격은 쇼와41년(1966년)부터 요미우리 신문사가 간행한 <신본격 추리소설 전집>입니다. 또다른 이름으로는 네오 본격.

 

기타무라: 감수를 맡은 마쓰모토 세이초는 신본격에 강한 의지를 품었다고 봅니다. 좀전에 언급한 <옥석>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본격만이 추리소설의 정도라는 것은 착각이다. 설령 착각이 맞는다 할지라도 당시 나온 추리소설들 대부분이 본격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현혹되는게 싫었다. (중략) 본격 안에서도 변격파적인 맛이 있다. 그런 점을 잘 조합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변격이 당연해져 추리 소설적인 재미-트릭이나 의외성같은-가 전혀 없는 현상이 발생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즉 마쓰모토 세이초는 본격 미스터리를 부정한게 아닙니다.

 

아리스가와: 어시스턴트를 기용해 트릭의 분류표를 만들었다고도 하니 관심은 있었던 거죠. 게다가 원래 ‘본격을 좋아하지만 쓰지는 않겠다’ 와 같은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쓰게 되었죠.

 

기타무라: 쓰게 되었지만 본격으로서 완성도가 썩 좋지는 않았죠.

 

 

본격 미스터리 작가가 <점과 선>을 쓴다면

 

아리스가와: 세이초 자신도 본격이나 트릭에 대해서 상반된 감정을 품었다고 봅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지만 트릭에는 재주가 없다, 하지만 필력이 있으므로 쓰게 된다, 따라서 완성된 작품은 묘한 형태가 됩니다. 작품이 널리 퍼져 일반 독자까지 읽게 되었을 때는 마치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인 것처럼 일컬어지니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거죠. <점과 선>의 알리바이 붕괴가 대단하냐고 하면 부정하고 싶지만 (웃음) 세부적으로는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 썼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4분간의 공백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장면은 가시이 역 부분입니다. 국철인 가시이 역에서 니시테츠 가시이 역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피해자로 보이는 남녀가 걸어 가는 장면이 목격되는 시간은 11분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는 비밀 설정이 훌륭해요. 만약 본격 미스터리 작가가 <점과 선>을 쓴다면 이 부분을 메인으로 삼겠죠. 

 

기타무라:  4분간의 공백을 소설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면 병상에 누워 4분이 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걸 깨달은 범인의 부인이 어떻게 해서라도 써먹으려 한 점을 문학적으로 썼으면 될테죠. 세이초 선생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리스가와: 병상에서 부인은 시각표를 응시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죠. 그리고 작중에 <수학이 있는 풍경> 이라는 그녀가 쓴 근사한 수필이 나옵니다. 그 수필은 이야기에서 소도구로만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또 종업원인 오토키의 죽음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잠깐 스치듯 나오거든요. 요즘의 본격 미스터리 작가라면 표면적으로는 부정부패 은폐에서 해답 찾기를 내세우고 사건의 진상은 이쪽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스스로 영화가 낫다고 말한 <모래그릇>

 

기타무라: <점과 선> 이외에는 어떻습니까 세간에는 <모래그릇>이나 <제로의 초점>이 대표작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아리스가와: <제로의 초점> 역시 트릭이 좋지 않습니다. <점과 선>의 열차 트릭과 마찬가지로 알리바이로 라디오를 쓰는 부분 역시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금방 깨닫지 못한다는게 이상 하거든요.

 

기타무라: 저는 <제로의 초점>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런건 트릭이라고 생각할 수 없잖아요. 이 작품은 젊은 아내의 불안과 그를 둘러싼 비밀의 진상을 쫓는 과정이 포인트입니다.

 

아리스가와: 하지만 세간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 작가는 알리바이를 트릭이라고 생각하고 썼다고 봅니다.

 

기타무라: <모래그릇>은 영화가 유명해서 그 이미지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죠. 신기하게도 세이초 선생 역시 영화 쪽이 낫다고 말했고요. 한센병 아버지를 둔 와가 에이료가 방랑 끝에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어 약속받은 영광을 위해 과거를 지운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원작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그럼 세이초 선생이 진짜로 쓰고 싶었던 것은 뭐냐, 바로 사건에 쓰이는 흉기입니다.

 

아리스가와: 새로워 보이지만 전전시대 탐정소설에서나 쓸 법한 트릭이죠.

 

 

 

 

 

 

엘리트에 대한 증오와 열등감

 

기타무라: 세이초 선생이 쓰고 싶어했던 또 한가지는 다른 작품에서도 곧잘 묘사되는 엘리트에 대한 증오나 열등감입니다. <모래그릇>에는 누보 그룹(Nouveau Grup) 이라는 신예술가 집단이 나오는데 당시 누벨바그에 편승해 나온 시인들을 희화한 인물들이죠. 여기서 세이초 선생의 혐오가 드러납니다. 원작에서 와가는 역겨운 인간인데 하시모토 시노부 각본, 가토 고 주연의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원작에는 색종이 눈의 여자가 나옵니다.

 

아리스가와: 그거 참 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을 (웃음)

 

기타무라: 사건을 쫓는 형사가 주간지에 실린 수필을 읽는데 거기에 열차 창문 너머로 색종이를 뿌리는 여성이 나옵니다. 그걸 읽고 형사는 범인이 피가 묻은 셔츠를 처분하지 않았을거라 깨닫는데 그 둘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거죠. 셔츠는 불태워서 묻어 버리면 그만이에요.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워요. 그런게 허용되는 방식이라면 일단 받아들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세이초 선생이 쓰면 알리바이가 됩니다.

 

아리스가와: 트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중편인 <불과 해류>는 상당히 본격 미스터리적인 설정입니다. 요트 경기에 나갔어야 할 남자가 경기에서 빠져나와 살인을 저지르는게 가능한가에 대한 알리바이 트릭물인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야심작이 아닐까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참나 이건 장대한 트릭이라고요. 공간과 시간이 얽혀 여태까지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알리바이인 겁니다." 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트릭이라는 단어가 정면으로 나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기타무라:  세이초 선생 입장에서는 트릭에 관한한 <점과 선> 보다 <불과 해류>쪽이 자신이 있었을지 모르죠.

 

 


마쓰모토 세이초와 아유카와 데츠야는 <물과 기름>

 

아리스가와: 그런데 세간에서는 <점과 선>이 높은 평가를 받았죠. <불과 해류>는 발상도 상식적이고 특별히 경탄할만한 건 없습니다. 만약 마쓰모토 세이초에 아유카와 데츠야의 트릭이 합쳐진다고 생각하면..

 

기타무라:  물과 기름이죠. 부자연스러워 질거예요. 세이초 선생은 아유카와 선생의 작품을 읽었을까요.

 

아리스가와: 요미우리 신문사의 신본격 시리즈에 아유카와 선생이 <목재 블록 집>을 썼으니 읽지 않았을까요.

 

기타무라: <검은 백조>는 읽었을 거예요.

 

아리스가와:  '스포일러 깨트리기' 작품 이군요. <제로의 초점>과 <검은 백조>는 같은 시기에 모두 <옥석>에 연재되었는데 둘다 스포일러가 의미없어 지면서 점점 비슷하게 흘러가죠. 게다가 둘다 저자의 대표작이 되기도 했고요.

 

기타무라: 종전 직후가 무대로 모티브가 같죠.

 

아리스가와: 한편 아유카와 선생은 <점과 선>의 영향으로 <사람 그걸 정사라고 부른다>을 썼습니다. 제목만 보면 <죽음이 있는 풍경>, <검은 백조>, <바람의 증언> 등 세이초 작품과 섞여도 위화감이 없어요.

 

기타무라: <모래성> 과 <모래그릇>도 마찬가지죠.

 

아리스가와: 마쓰모토 세이초와 대척점에 있는 트릭 제조기 아유카와 데츠야는 패럴렐이랄지 서로 상대방의 그림자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기타무라: 실은 같은 인물이었다던가 (웃음)

 

아리스가와: 이중인격이라면 무서웠을 겁니다 (웃음)

 

기타무라: 마쓰모토 세이초는 여행 미스터리의 효시라는 점도 있죠?

 

아리스가와: 그건 아유카와 데츠야가 먼저입니다.

 

기타무라: 아유카와 선생은 여행 미스터리 이미지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아리스가와: 아뇨아뇨, 풍부한 여정이 담겨있는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유카와 데츠야의 <검은 트렁크>에 나오는 온가가와나 니조는 <점과 선>의 가시이와 그렇게 멀지 않아요. 재미있는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기타무라: 그렇군요

 

 

일본 각지역의 지도가 머리 속에 들어 있다고 본다

 

아리스가와: 세이초는 뭔가를 타고 이동하는걸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몇시에 XX선을 타고 몇시 몇분에 O역에 도착했다 라고 쓰는 경향이 있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왠지 기분이 안 좋거든요. 사람에 대해선 별달리 신경쓰지 않는데 몇시 급행을 타면 몇시간 정도 걸리겠구나 하면서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을 상상합니다. 같은 버릇이 있구나 싶어요. 아유카와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 묘사에 뛰어나지만 세이초는 쏟아붓는 역량 자체가 다릅니다. 아마도 일본 각 지역에 대한 지도가 머리 속에 들어 있어서 여행 방법이나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썼을 거예요.

 

기타무라: 일본 구석구석을 망라하고 있었군요.

 

아리스가와: 여러 작품에서 일본 각 지역이 무대가 되는데 각각의 무대에 필연성이 있는 느낌이 듭니다. 머리 속에서 카드를 순차적으로 꺼내어 등장인물의 심상 풍경이나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일본 각 지역을 여행하는 형태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체의 마력

 

기타무라: <점과 선> 이후로 잠깐 손을 놓았다가 나중에 다른 작품을 읽어보니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정말 훌륭한 겁니다. 걸작의 숲이라 할 작품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은 것도 읽게 되더군요 <푸른 묘점>은 시작부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재미있어요. 해답을 보여주는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면 지루한데 <바람의 선>으로 가면 정말이지 도박과도 같습니다. 이 작가의 역량에는 말려들 수 밖에 없어요.

 

아리스가와: 문체가 훌륭해서겠죠.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요.

 

기타무라: 문체의 마력입니다. 본격의 형태에서 트릭은 이해할 수 없지만 문장의 힘을 빌어 걸작으로 탄생한 단편이 <가문(家紋)> (죽음의 가지(死の枝)>에 수록)입니다. 어둠의 공포를 그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대걸작이죠.

 

아리스가와: 무서운 작품이죠.

 

기타무라: 편의점 같은 게 없던 무렵의 어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량이 없는 작가가 이런 트릭을 썼다면 범작도 안됐겠죠. 실로 거장의 힘입니다.

 

 

 

밤에도 환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시대였다면 통용되지 않을 트릭

 

아리스가와: <투영> (<잠복> 수록)이라는 단편도 깊은 맛이 있습니다. 전국지 신문 기자인 남자가 해고를 당해 지방도시의 작은 신문사로 옮겨가게 되는데 지방 신문사 사장이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인겁니다. 사장이 지방자치 단체의 부정부패에 냄새를 맡는 과정에서 구청의 한 남자가 불의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게 수상해 보여서 혹시 살해당한게 아닌가 조사한다는 이야기로,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 신문 기자의 경우는 어떠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전 풍의 트릭입니다.

 

기타무라: 본격이지만 그보다는 인생의 단편을 보여준 작품이죠. <투영>의 트릭은 지금처럼 밤에도 환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시대였다면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가문>의 어둠이 독자의 눈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죠.

 

아리스가와: 어둠은 밤의 어둠을 뜻하고요.

 

기타무라: 그렇습니다. 밤의 어둠. 그게 마음의 어둠과 연결되는 거죠.

 

아리스가와: <투영>에서는 어둠이 지방 자치단체의 어둠과도 겹칩니다.

 

기타무라: 마쓰모토 세이초 안의 어둠이 본격 미스터리와 결합되었을 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거죠. 미야베 미유키 씨가 엄선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은 상,중, 하로 된 앤솔러지인데 3권의 마지막에 있는 작품이 <불의 기억> 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어두운 밤하늘에 빨갛게 빛나는 불을 본적이 있다는 기억에 얽힌 단편이죠. 그 불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그 때 함께 있었던 남자는 누구였나 하는 수수께끼가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초기작이자 작가로서는 첫 울음소리와도 같은 단편을 앤솔러지 마지막에 둔 미야베 씨의 감성, 놀랍습니다. 역시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린 어둠의 기억이라는건 읽는 이에게 뭔가 깊은 느낌을 줍니다. 

 

   

 

 


비밀을 지닌 인간의 불안과 공포

 

아리스가와: 저도 시야가 넓어져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읽는 맛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트릭이나 추리에 얽매이지 않고 읽으니 이야기에 최적화된 인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다채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비밀을 지닌 인간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박진감 넘치는 묘사가 매력적입니다. 비밀을 지닌 사람이 죄까지 짓는다거나 수사가 좁혀올수록 불안에 떠는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추리소설로 보면 추리는 없지만 수사가 있죠. 형사가 해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수사를 해서 비밀을 폭로합니다. 농밀한 비밀의 냄새와 그걸 쫓아가는 서스펜스에 빠져들게 되는거죠. 예전에 같은 잡지(올 요미모노)에서 미우라 준(*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씨와 대담을 했는데 '세이초 버튼' 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세이초 소설에서는 출세를 하거나 여자에게 인기 있는 등 바야흐로 인생이 막 꽃피기 시작할 무렵 세이초라 쓰인 버튼이 보입니다. 그걸 누르면 추락해서 바닥에 떨어지게 되죠. 누군가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파멸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럼 누르지 않으면 될거 아닌가 싶은데 결국 누르고 마는게 세이초 버튼 (웃음)

 

기타무라: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는 그런 평범한 소시민이 나오죠. 단편 <증언> (<검은 화집>에 수록) 은 하찮은 일로 솟아나게 되는 불쾌한 감정을 무척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바람 피우는 대상과 있으면 그녀의 일에 아는 척하기 일쑤인 생활 설계사가 모른척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 걸 굳이 나서서 끼어들곤 합니다. 그런 후 바람 피운게 들통나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수렁에 빠지게 되죠.

 

아리스가와: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수상한 인물은 대부분 유산때문이거나 원한으로 인한 알기 쉬운 동기를 지니고 있고, 범인이 품은 비밀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이초 작품에 쓰인 비밀은 훨씬 다채롭고 묘사하는 방식도 여러모로 공부가 되는데 그런 점이 본격과 다른 점이죠.

 

 

 

 

반세기가 지나도 변질되지 않고 깊은 맛이 풍기는 세이초 작품

 

기타무라: 세이초 작품에서는 근원적인 공포나 애증, 억압이나 질투 등 복잡한 감정이 발군의 필력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자크 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물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안개의 깃발>에서는 변호사에게 복수하는 여성이 나옵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면서 복수를 하는가, 정도를 벗어난 집념이라고 할지 불합리함이 좋습니다.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테마인 겁니다. 이런게 부자연스럽다 하는 것은 착각이겠죠. 그런 후 여성지에 맞는 노선을 걷는 것 역시 훌륭합니다. 검사와 부정부패 사건의 용의자 아내와 비련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한 서스펜스물인 <파도의 탑>같은 명작은 멜로 드라마같아서 저도 모르게 몰입했습니다. 필력에 취하게 되요.

 

아리스가와: 시대가 변해서 지금 시대에는 이런 일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지만 비밀을 지닌 인간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끼는 서스펜스는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이 시대는 이랬구나 하며 시대물로 감상하기도 좋습니다. 작품이 나온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오래된 느낌보다는 깊은 맛이 납니다. 

 

기타무라: <제로의 초점>에서 묘사된 남녀관계의 거리감이나 연애에 대한 감각이 그러합니다. 역사 탐구물인 <쇼와사 발굴> 역시 최신 연구서에 새로운 정보가 나와있겠지만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니면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없어요. 제국은행 사건(*1948년 도쿄 도시마 구의 제국 은행 시나마치 지점에서 발생한 독극물 살인 사건)은 정말 깜짝 놀라게 되고 2.26사건 (*1936년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1483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사건)의 박력이 넘칩니다. 전부 단숨에 읽게 됩니다. 장편에서 한 권을 꼽으면 <검은 복음> 단편에서는 정평이 난 작품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썼다면 실패했을 소재를 써서 괴기한 수작으로 끌어올린 <의외의 이치>, <상신서>, <똑같은 두 권의 책>, <달> 등 걸작이 연이어집니다. <점과 선>과 <모래그릇> 밖에 읽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작품도 읽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