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둘러싼 모험

[인터뷰] 기시 유스케 미스터리 클락 간행 기념

디멘티토 2022. 4. 5. 11:38

 

2017년 일본 미스터리 문학 최대의 수확! <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인터뷰

 

-2018년에 작성한 것 

원문: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오토코토(otoCoto) 이었으나 삭제가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찾을 길이 없다.

취재, 글 스기에 마츠고이(杉江松恋)

촬영 -니라이 다사토(田里弐裸衣)

 

 

SF, 호러, 미스터리 장르를 오고가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작가 기시 유스케는 실은 당대 최고의 트릭 제조가이기도 하다. 대표작 <유리 망치>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충격이 커서 유리가 아니라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라는 독자도 적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이토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펼쳐내는 미스터리 작가가 또 있을까. 방범 탐정 에노모토 시리즈는 이전에 <도깨비불의 집>, <자물쇠가 잠긴 방>이 나온 바 있다.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리더 오노 사토시가 주연을 맡은 텔레비전 드라마판도 호평을 받았으며 기억에 남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기시 유스케의 신작 <미스터리 클락>을 '개인적으로 2017년 일본 미스터리 최대의 수확이었다!'고 격찬한 서평가 스기에 마츠코이(杉江松恋)가 화제의 신작에 대해, 그리고 건물의 방범 대책부터 에노모토 시리즈까지 꼼꼼히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트릭으로 거는 승부는 안된다? 

좋다, 그럼 한 권으로 모두 보여주마!

 

-<미스터리 클락>은 특히 표제작이 근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트릭을 성립시키기 위해 투입된 아이디어 양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고 나니 감동적이었거든요. 이런게 바로 추리의 즐거움이겠죠.

 

본문에도 미스터리 강의가 잠깐 나오지만 웬만한 트릭은 이제 나올만큼 나왔다고 봐야죠. 그런 면에서 단순한 트릭을 쓰고 진상을  밝혀내서 정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트릭을 쓰는 방식도 좋다고 봐요.

 

-그런 경우 복잡한 트릭을 조합해야 하므로 작가가 검증해서 소설화 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최종적으로 수정했을 때 이게 300매나 되었어요. 중편이라고 보기에도 너무 길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미스터리 클락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되겠네요.

 

미스터리는 작가가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독자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건 작가가 다 할테니 독자는 그냥 믿고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기시 유스케씨는 예전부터 트릭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수수께끼 풀이의 정점은 트릭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다들 기대에 차서 읽는구나 싶습니다.

 

물론 트릭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한물 갔다고 여기는데는 아쉬운 느낌이 들죠. 본문에서도 강론이 펼쳐집니다만 기계 트릭는 유치하고 심리 트릭은 어른스럽다고 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고 봅니다. 환영이나 착각을 유도하는게 목적이라면 심리적인  미스 디렉션을 쓰는게 마땅하지만 기계적 장치가 곁들여 지지 않으면 훌륭하다고 볼 수 없거든요. 그래서 미스 디렉션을 쓸 때는 두가지 요소를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따로 나눠 쓰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새로운 트릭이 나온다는 사고 방식 또한 마찬가지에요. 아무도 모르는 지식이라고 해서 단순한 트릭으로 쓰면 '음 그렇구나' 에서 끝나게 됩니다. 모든 방법을 써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봐요.

 

-결국 무엇을 써서 환영을 만들어 낼 것인가, 작가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가 관건이겠군요.

 

요즘처럼 전자기기가 일반화 되고 가전 제품도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범인 역시 계획을 짤 때 그 점을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독자가 낯설게 여길 수도 있지만 쓰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비 지식이 필요하면 사전에 어떤 형태로 제시한다던가 하는 공부가 필요하겠죠.

 


4개의 단편에 4개의 밀실

야쿠자에서 거대 해양 생물까지 등장

  

-이번 작품에서 그런 배려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게 <거울 나라의 살인>입니다. 진상이 밝혀질 때 알게 되는 정보를 위해 상당히 고심해서 준비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반 이상을 수정하고 가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가장 까다롭게 여길지 모르겠네요. 이 시리즈가 특별한게 영상화가 먼저 되었고 나중에 잡지 연재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단행본에 수록할 원고를 쓸 때 영상본을 참고하는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웃음) 이번 작품에서는 밀실에도 다양한 변주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중에서도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던게 <거울 나라의 살인> 트릭이었습니다.

 

- 네 작품 모두 저마다 다른 성격의 밀실이잖아요. 가장 짧은 <허술한 자살>은 자구책으로 출입문에 엄중한 장치를 단 폭력단 사무실이 무대이며 등장인물 또한 대부분 야쿠자입니다. 그런 반면 후반부의 <콜로서스의 발톱>은 상당히 판타스틱해요.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처음 선보이는 대왕오징어 미스터리'라고 하면 다들 혹하더군요. 거대 해양 밀실이잖습니까.

 

밀실은 실제로는 잠금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도 다양한 장벽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이웃 아주머니가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을 맞닺뜨리는 것 만으로도 밀실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물리 현상을 장벽으로 쓸 수는 없을까 했던게 <콜로서스의 발톱>입니다. 구상은 했지만 전문 지식이 부족하기도 했고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았어요. 근데 <야성시대>의 담당 편집자가 해양 공학 전공이었다는게 무척 행운이었죠.

 

-굉장한 우연이네요(웃음)

 

그렇게 도움을 받아서 JAMSTEC(일본 해양 연구개발 기구)를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통감했던 점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막연히 가능할거라 생각했던 점이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거나, 여기서 덜미가 잡혀 못쓰겠다 싶은게 오히려 작품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좀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르거나 아니면 범인을 잡는 방법으로 쓰면 되겠다 싶었어요.

 

-<미스터리 클락>에서는 등장인물이 아유카와 데츠야 <다섯 개의 시계>를 언급합니다. 기시 유스케씨는 그런 형태로 과거의 작품을 참고하는 듯한, 즉 메타 소설적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의미라도 있나요?

 

그렇게 쓰면 재미야 있겠지만 마니아 이외에 일반 독자는 배제되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제목에서도 시계 트릭임을 알 수 있고 <다섯 개의 시계>를 알고 있는 분은 내용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을겁니다. 그럼 이 작가는 뭘 노리고 있는걸까 하며 사고의 운용 범위가 넓어지는 거죠. 설사 다섯 개의 시계를 모른다 해도 다양한 연상을 불러 일으키며 과거에 이런 작품이 있었구나 상상할 수도 있을테고요.

 

-<미스터리 클락>은 이른바 클로즈드 서클, 폐쇄공간과 관련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범인이나 다음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입니다. <콜로서스의 발톱> 이외의 세 편은 탐정인 에노모토에게 어떤 형태로든 위기가 닥친다는 스릴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형태로 탐정을 활용하는 의미는 뭔가요?

 

탐정을 편하게 내버려 두면 좋게 보이지 않아요. 제삼자가 등장하고 자신은 별다른 해를 입지 않는 위치에서 추리를 하는 자체는 괜찮지만 패턴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질리는 기분이 듭니다. 때로는 심각한 상황에 부딪히고 자구책으로 추리를 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죠.

 

밤범탐정 에노모토 게이 "실재한다면 가장 곤란한 탐정"

 

 

-그렇지 않으면 미토 고몬(水戸黄門) 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있겠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로 겉으로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드는 인물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새삼 에노모토 게이의 존재의식에 대해서도 묻고 싶네요. <미스터리 클락>에 수록된 작품은 상황으로 볼 때 탐정이 없어도 사건을 해결로 이끄는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허술한 자살>에서는 조직의 딸이 탐정 역을 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탐정인 에노모토 게이가 매 번 얼굴을 내미는 의미는 뭔가요?

 

저는 초인적인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탐정이 등장인물 중 가장 머리가 좋고 모든 걸 알고 있으면 소설이 정체되며 그저 예정된 수순을 밟아가는 전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에서 가장 머리가 좋아야 하는 인물은 수수께끼를 푸는 이가 아니라 범죄를 구상하는 범인입니다. 따라서 범인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범죄를 실행하고 나면 설령 파편된 우연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 해도 상관없거든요. 탐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쩌다 평범한 사람이 해결한다 해도 말이죠. 에노모토 게이는 사기꾼(트릭스터)같은 역할입니다. 명탐정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둑이니까요.


-일단 방범 탐정, 방범 전문가라 칭하고 있죠. 

 

시리즈를 통해 쓰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범인이 탐정이 나타나기를 상정하는 것과 별개로 모방적인 시점과 같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면 싫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정공법으로 하면 절대 깨닫지 못하는 점이 드러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에노모토는 상황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해결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범죄자의 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 하나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미스터리 클락>에서도 조사 과정은 극단적으로 압축되어 있고 범행을 저질러도 금방 해결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에노모토는 안락의자 탐정처럼 생각하기 충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캐릭터로서는 그 반대인거죠.

 

-재미있네요.
 

안락의자 탐정은 할머니 같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 수수께끼를 푸는 존재이지만 에노모토는 초인적인 통찰력으로 뭐든지 꿰뚫어 보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냥 특수한 관점에서 보는 거죠. 따라서 옥상을 뛰어 넘는 것과 같은 신체 능력을 쓰게 하고 범인을 상정하지 않는 방향에서 해결에 이르는 형태를 취하고 싶었습니다.


- 그렇군요.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어떻게 범행이 드러나 비밀이 밝혀지는지를 전제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범행 계획이 먼저고 그걸 어떻게 무너뜨리냐는 식으로 범인의 생각을 되짚어 봄으로서 작가는 이야기를 짜내는 거로군요. 기시 씨의 미스터리 작품은 그런 형태가 많아서 에노모토 시리즈 첫번째인 <유리 망치>도 그렇고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푸른 불꽃>도 범인 중심 소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모든 작품이 범행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범인으로 삼기 가장 싫은 탐정은 누구인가' 같은 구조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한 편 한 편 전부 다른 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품에서 벌어지는 범행에 인생을 바치니까요(웃음) 에노모토는 한 번 정도 사건 해결에 실패한다 해도 인생을 그르칠 일은 없습니다. 물론 범죄자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지만 에노모토가 약올리듯 범행을 폭로하면 좀 안스럽습니다.

 

-쓰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네요(웃음) 에노모토는 드라마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아라시의 오노 사토시가 맡았습니다. 상당히 잘 나온 것같은데 원작자로서 어떻게 보셨습니까?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동시에 원작을 존중해 줘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좀더 많이 썼더라면 시즌제로 갈 수도 있었을테지만요(웃음) 아무래도 <파트너>처럼 될 수는 없겠죠.

 

 

건물의 방범 대책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향방은?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도 묻고 싶습니다. 차기작도 단편인가요?

 

글쎄요. 기본적으로는 모두 단편입니다. <미스터리 클락>은 장편으로 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분량을 늘리기 보다 쓸데없는 부분을 쳐냄으로서 수수께끼를 즐겼으면 합니다. 준비하고 있는 소재는 열가지 정도 되지만 쓸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습니다. 트릭이 떠오를 때마다 내면 안되고 여러 부분을 쪼개보고 구축해가야 하니까요. 다만 모처럼 트릭으로 생각해 낸 거니까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에노모토 시리즈도 이렇게 이어서 쓸 생각은 없었지만 쓰는 과정에서 두뇌가 미스터리 모드가 되면 자꾸 다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세상 일이란게 순리대로 돌아가는건 아니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상당히 스트레스인데 어떤 사물을 움직이려 할 때는 행과 불행을 동시에 선사한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감정적인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만 진행되는 본격 미스터리는 일종의 이상향 내지는 도원향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장편 <다크 존>이 가도카와 문고에 들어갔습니다만 그것도 외형적으로는 호러지만 내용은 퍼즐 소설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렇죠. 호러는 양념같이 연출한 거라서요.

 

-그런 작품의 시작은 <크림슨 미궁>부터 인가요?

 

그렇습니다. <크림슨 미궁>은 문고판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이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고 주인공이 수동적이었습니다. 반대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했던게 <다크 존>이었을지 모르겠군요.

 

-이후라고 하니 에노모토 시리즈의 전작이 합본으로 전자서적화 되었습니다.

 

네. 한꺼번에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은 종이책이 좋지만 기술의 진보는 굉장해서 사진이나 음악도 넣을 수 있고 여러가지가 가능하니까 전자서적화 되는 길을 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최근에는 작은 글자로 보면 피곤해지니 문자 크기를 크게 할 수 있는 점이 무척 고맙고요.

 

-(웃음) 같은 세대로 굉장히 공감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이사하셨다면서요. 지금 살게 된 건물의 보안에 대해 생각한 점이 에노모토 탄생의 원점에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조사를 한 후에 엘리베이터에 카메라를 설치해 달라는 둥 관리 사무실에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 보안 업체 분이 영업하러 오시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니 내가 훨씬 더 잘 아는구나 싶더군요(웃음) 예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측에서 방범에 대해 취재 해달라고 의뢰를 한 적이 있는데 거절했습니다. 모처럼 알아낸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게 중요하니까요. 그게 알려지면 또다른 새로운 걸 생각해야 거든요

 

-그럼 지금은 이상적라고 생각한 방범 대책이 세워진 곳에 살고 계신건가요.

 

근데 거기에 고양이가 들어와요. 고양이는 도둑보다 훨씬 더 막기 어려운게 입구를 전부 막았는데도 어느새 마당에 있는 겁니다. 지금 한창 사투 중이에요. 

 

-고양이는 방범 프로보다 더 강하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