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동안 새벽에 명명을 듣지 않았는데 어제는 재즈수첩 듣다가 이어폰을 낀 채로 잠이 들었고 명명의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중간쯤에 깼다. 깰 때가 되어서 그런 건지 치프라 때처럼 연주에 깬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잠에서 깨니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꿈과 현실을 오가며 들리는 연주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예밀 길레스는 소련의 오데사 태생으로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지역이다. 우크라이나어로 하면 예밀 길레스가 아니라 밀 힐렐스다. 하지만 예밀 길레스로 부르고 있고 명명 진행자 역시 그 이름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 이 진행자는 고집스럽다. 위키에도 길렐스라 표기하고 있는데 메모 부분에 힐렐스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힐렐스라 표기하기로 한다.
아무튼 잠결에 들린, 누군지도 모를 피아노 연주는 한 음 한 음 가슴에 선명하게 내려 앉았다. 들으면서 문득 치프라를 떠올렸다. 연주 기법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치프라 때 충격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처럼 힐렐스의 연주가 뇌를 강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힐렐스의 연주를 듣지 않은 것도 아닐텐데 유독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아마 새벽이라는 시간 대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낮에 들었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테니.
강력한 타건으로 격정적이라는 평을 듣는 힐렐스의 연주가 차갑고 정제된 기법으로 완성될 수 있음은 그것이 브람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난 브람스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그의 곡은 가슴을 파고 들 때가 있다. 그렇다 해도 다른 작곡가들처럼 격정적으로 파고들진 않는다. 그만의 방식으로, 냉정하고 올곧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힐렐스는 그런 느낌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첫번째 알레그로 https://youtu.be/uKhAt-b80mo
두번째 아다지오 https://youtu.be/7i11ZJ1J3_w
덧)그러고보니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때도 이랬다. 그걸 깜빡했네. 요새 뇌를 강타하는 곡들은 새벽 잠결에 듣는 명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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